2017년 10월 2일 월요일

구르는 돌

나는 내가 핀볼 속의 공 같다고 생각한다. 아니 정확히는 핀볼 그 자체 같다. 나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힘내지 않는다. 나는 외부의 힘에 반응하며 점수를 쌓아올리는 편이다. 그래서 나는 나를 이리저리 굴리고 튕기기 위해 상황에 던져버린다. 임의성을 즐긴다고도, 임의성에 의존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때 보루는 선택의 주체가 나라는 것, 이 게임에 참여하기를 선택하고 이야기를 해석하는 주체가 나라는 것이다.

요즘엔 핀볼 게임의 진행시간이 짧아진 것 같고, 그건 그냥 공으로서의 내가 점점 가벼워지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이런 저런 아이디어들이 연결되고 영감을 받는 순간의 아드레날린의 시효가 짧아졌다. 이런 식으로 계속 해나갈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니까, 나는 나를 조정하고 통제하고 관망하는 일이 지겹다. 외부의 욕망과 제약들, 자신의 한계를 이해한 채로 최선의 목표를 달성하는 방식이 지겹다. 이제는 무언가를 뚫고 가고 싶다. 정확히 겨눈 말을 내 뱉을 때처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글자들을 나열할 때처럼. 쭉 뻗은 길을 달릴 때처럼. 마주보고 있는 사람의 눈동자를 바라볼 때처럼.

한편, 이런 생각을 할 때 더 이상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는구나. 부모님과 따로 살며 월급을 받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나는 내게 짐이기만 한 게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