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19일 수요일

그 일은 전혀 사소하지 않습니다

트위터에 성폭력 경험에 대한 용기있는 진술들이 연이어 올라오고 있다. 일련의, 유사한 패턴의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 역시 지난 경험들 몇 가지가 성폭력이거나 그럴 위험에 처했던 '사건'들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 사건들을 말하는 데 나에겐 별 용기가 필요하지 않다. 인지한 뒤에도 별 일 아닌 사건들로 정리되었기 때문이다. 정말 운 좋게도 나는 별로 고통스럽지 않았다. 심각한 물리적 폭력은 동반되지 않았고, 그들이 내게 별로 중요한 사람이 아니었으며, 또 오랜 시간이 지난 일들이어서 그런 것 같다. 충분한 시간이 지난 뒤에 깨달은 것이다.

늘 나오는 얘기지만, 사회적으로 문제가 없는 이들이었고 친구거나 동료였다. 상황이 발생했을 때, 나는 이상함을 분명히 감지했음에도 모르는 채 넘어갔다. 사이가 어색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나서서 우스개 소리를 하기도 했다.

이렇게 처신할 수 있었던 건 내가 약자이지만, 강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에게 잘못을 알려주는 데 실패했다. 그렇다고 해도, 그런 이유로 어렸던 나의 유연함과 관용, 사람에 대한 신뢰를 후회하거나 탓하고 싶지는 않다. 그때 나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내 나름의 방식으로 나를 잘 지켰던 것이다. 내가 사람으로 여기고 지내왔던 사람에게 (사람을 그 외에 다른 어떤 방식으로 볼 수 있는지 나는 모르겠다) 만져보거나, 찔러보거나, 지배하기 위한 여체로 대상화되는 순간의 기분은 형언하기 어렵다.

아프진 않았지만 기억은 하고 있다. 그들은 분명 잊었을 것이다. 어째서인지 나는 결코 잊지 않았다. 이름도, 의미도 덧붙이지 않은 채 그 경험들을 보관하고 있었다. 바로 이 점이 늘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알겠다. 사실은 그때 더럽다고 느꼈다. 사실은 그때 눈 앞의 사람이 어쩌면 나쁜 사람인 게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그게 맞았다. 나는 제대로 판단하고, 나를 지지하고, 더 강해지기 위해서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다음 번에 나와 나의 동료 여성들에게 유사한 상황이 일어난다면 그때는 빠르게 인식하고 단호함으로 방어하고 공격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정말 신기하다. 왜 이걸 이제야 알았을까? 나는 나 자신에 대해 그렇게 눈치없는 사람이 아닌데. 그런데 아마 2,3년 전에만 깨달았어도 자책이 심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나는 내가 바보같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잘못은 그들이 했는데도. 지금은 앞에 적었듯, 나의 좋음이 나를 지켰다고 생각한다.

2016년에 내가 여성 시민들의 연대를 실감하고, 내 안에도 피해자/생존자를 지지하는 마음이 뚜렷한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미시적 의미의 공동체가 아닌) 사회라는 게 이런 거구나. 이런식으로 개인을 지지해주는 거구나, 정말 처음으로 실감해보는 것 같다. 어디로 나아가야 할 지 조금 알 것 같은 기분. 우리를 위해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