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4일 일요일

서점에 갔다.

   서점에 갔다. 무척 오랜만이었다. 돈이 궁해지면 가장 먼저 그만두는게 도서 구입. 근데 본래 책을 오프라인에서 사는 편이고, 서점에 '구경'가면 어김없이 뭐라도 하나 집어 나오기 때문에 요즘 같은 때엔 아예 서점을 들르지 않게 된다. 오늘은 모처럼 종로라 맘 속 지름신을 굳게 단속시키고 들어갔다. 정말이지, 많은 새 책들 사이를 좀 걷고 싶었다.

뭔가를 사리란 기대를 아예 접고 들어가니 뭐라도 읽어야 겠다는 마음이 절실해졌다. 책 한 권 다 읽을 시간은 안되고, 찝찝함 없이 적당량 읽을만한게 무엇 있을까 하며 신간 소설 진열대를 둘러보다 천운영 소설집 <엄마도 그러하듯이>가 눈에 걸렸다. 벗 하나가 올해의 단편이라며 추천했었다.

담담한 묘사로 이루어진 소설이었다. 그러나 작가들만이 잊지 않을 법한 단어들이 곳곳에 별사탕처럼 박혀있었다. 세 장 만에 목이 따갑고 머리가 찡했다. 눈시울이 시큰댔다. 결국 터지려는 순간, 무심히 동선을 그리던 주인공이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그러자 내 눈물은 멋쩍게 잦아들었다. 마치 술자리에서 옆사람이 만취하면 내 정신이 돌아오듯이.

노모의 죽음을 맞은 장남의 심리를 좇는 이야기다. 주인공은 제 감정의 결을 돌볼 줄 모르는 묵묵하고 성실한 중년 남자여서 작가는 그의 내면을 서둘러 표현않고, 그가 구멍을 감지할 때까지 천천히 어머니를 떠나보내는 절차들을 묘사한다. 그게 너무 좋았다. 요새 유독 이야기들이 '과정'을 전개하는 장면에 홀린다. 시간이 채워지면서 마디가 생기는 것 말이다.

몇 번 더 콧잔등이 달아오르는 순간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는데, 작가의 기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절묘한 거리조절. 맑은 콧물만 훌쩍이며 감탄했다. 십점이네 십점.

   출간 소식 듣자마자부터 정말 갖고 싶은 책이 있었다. 황현산 선생의 <밤이 선생이다>. 원래 갖고 싶은 책이나 앨범은 가지기 전까지 들여다보지 않지만, 아무래도 그건 한참 나중 일이 될 것 같아서 일단, 집어들고 털퍽 앉았다. 그러고보니 반디 의자가 다 없어져있었지만, 원래 서점 독서는 바닥에 앉아서 하는게 제 맛이다.




짧은 글들은 평범한 형식을 지키고 있었다. 일상적인 소재로 시작해서, 주제를 꺼내고, 마지막엔 통찰로 마무리하는. 옛사람, 혹은 나이든 사람만이 이런 식의 글쓰기를 할 수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포리즘을 감당할 수 있고 통찰을 자랑않는 글. 해야할 말만을 단정하게 담은 글. 너무 술술 읽혀서 마음을 꾹꾹 눌러가며 읽었다.

   한편 앉은 자리에서 발치에 걸리는 책이 있었는데 천운영의 <그녀의 눈물사용법>이었다. 아 원래 눈물사용에 밝은 작가였군. 서점이나 도서관에 오면 이렇게 동선이 독서를 이끈다. 기꺼운 마음으로 책을 펼쳤으나 배가 너무 고파서 다 못읽고 일어났다. 새우버거를 허겁지겁 쑤셔넣고 근처의 국정원 집회에 있었던 아빠를 만나 같이 집에 왔다. 중년 넘어간 남자들은 다른 사람 발걸음에 보폭을 맞춰주지 않는다. 그건 그들이 늙어서가 아니라 옛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아마 젊을 때도 똑같았을 것이다.

지하철에서는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무슨 책 봤니?
황현산의 <밤이 선생이다>.
아니 네가 황현산 선생을 알아?
응 알지. 너무 좋던데. 다 못읽었어.
허 텔레파시가 통했나.

그러고 아빠는 배낭에서 <밤이 선생이다>를 꺼내주었다. 감격에 겨워 주는 거냐고 물었더니 오늘 다 읽고 집에 두고 가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럼 그렇지. 취직하면 아빠한테는 예쁜 캡모자를, 엄마한텐 <엄마도 그러하듯이>를 선물해야지. (동생녀석은 뭘 줘도 별로 안기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