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29일 월요일

시간 의상실

   내가 뭘 원하는지 자꾸 잃어버린다. 잊어버리는 거 아니야. 잃어버리는 거야. 열심히 메모해둔 쪽지를 분명 처음엔 손에 쥐고 있는데, 여기 저기 사방에서 거절당하면서 정신없이 튕겨나가다 보면 어느새 손은 텅 빈 채 땀에 젖어있고 바닥없는 간절함만 어두컴컴하다.

2013년 7월 2일 화요일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다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다. 일기 안 쓴지 아주 오래된 것 같았는데, 그렇지도 않구나. 한 달도 안되었으니. 키보드는 여전히 고장난 채 있다. 지금 굳이 넷북 켜서 쓴다.

어느 회사 면접에 떨어지곤 평소보다 좀 더 상심했다. 아마 상황이 절실한 탓. 거기서 내게 기대감을 많이 주기도 했고. 하기야 주변 얘기를 들어봐도 꼭 면접 분위기 좋은 데에선 떨어지고 아닌 데에 붙더라는 이야기는 많지만. 장기적인 전망을 갖고 일할 수 있을 것 같은 몇 안되는 곳 중 하나였기에 더 아쉬웠다. 별 수 없지 뭐.

그 동안 일일 알바를 전전했다. 정말 가뭄에 빗방울처럼 돈이 똑, 똑 떨어지며 순식간에 지면에 스며들고... 이 회사 저 회사 다녀보니 각각 분위기가 정말 천차만별이다. 조용하고 가라앉은 곳, 느슨하고 활달한 곳, 여자가 많은 곳, 남자가 많은 곳, 비상장 회사부터 대기업까지. 그나저나 당연하게도 회사는 대학사회의 연장이었다. 수동태로 사람 가리며 인간관계 맺어온지 어언 7년, 주변에 어느덧 재밌고 똑똑한 (그리고 조금 절망적인) 소수의 사람들만 남았는데. 그 재미없는 테레비 개그하던 대학교 애들 전부 다 회사에 있었다. 아 어쩔 수 없는 건가. 저 맞장구의 세계를 피할 수 없단 말인가... 옷만 정장으로 갈아입었다 뿐이지 새터 때 한 번 보고 뒤돌아 도망쳤었던 그 친구들이 저기 고스란히. 아아. 사춘기 소녀가 되어버릴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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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에서 BAR이라는 용어를 많이들 쓴다. 어느 주부 게시판에서 비롯된 용어인데... 각설하고, 뭔가 약간 터무니없는 낭만이랄까 환상같은 걸 투사한 대상을 말한다. 인도의 자유로운 영혼이라던가 북유럽의 조용하고 모던한 삶 같은. 본인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가 보통 타인에게 들통나는 종류의 것. 나는 내 BAR이 궁금해져서 찾아보려 했지만 도통 없었다. BAR이 웃음거리의 대상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하나도 없다니(모르겠다니), 이 역시 비루한 영혼 아닌가. 안그래도 요즘 내 인생행로가 이렇게 걍팍한 것은 방어적이고 안일한 조로증 때문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말이다.

그러다 오늘 문득 찾아냈다. 내 BAR은 구김살 없는 속물적인 소녀였다. 투명한 여자애들. 사랑받는 데 최적화 된 애들.(개츠비에서 데이지가 바라는 딸 아이 같은) 얼굴에 바로바로 욕망을 애교로 띄워내는 그 투명한 구조 때문에 나는 언제나 그들의 그림자는 더 깊으리라 생각해왔다. 주변의 우울한 스놉/룸펜들보다 훨씬 더. 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그네들과 별로 친한 편은 아니었는데 그래서 더 내 BAR로 남아있는지도 모른다. 걘 너무 철이 없다고, 남자를 너무 막 만난다고, 애가 좀 생각없어보인다고, 저번엔 자기 명품 가방을 대놓고 자랑하더라고 뒷다마 마당에 오르내릴 때도 어쩐지 영 흥이 나질 않았다. 그도 그런게, 그렇게 솔직하게 명품 자랑을 하면 조금도 거만해 보이지 않는 걸. 그렇게 자기방어의 레이어를 한 겹도 안두르고 있는 애를 까내리고 싶지는 않다고. 나처럼 겁많고 내면에선 열등감이랑 우월감 쩌는 애 보다 훨씬 멋지다고 생각했었다.

지금은 별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굳이 타인의 깊이를 상상해주는 일도 예의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