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2일 일요일

연어와 피자와 다우니의 천국!

   연어와 피자와 다우니의 천국! 미제와 삼성의 아름다운 팀플레이! 말로만 들어왔던 코스트코에 갔었다. 차도 없고 차있는 친구도 없는 관계로 우리 둘은 든든히 백팩을 메고 버스를 탔다. 그 전에 원기충전을 위해 하루 지난 치킨과 동빙고의 로얄밀크티 빙수도 흡입했다. 밀탑도 좋고 차 박물관의 수북한 녹차빙수도 좋아하지만 역시 이것이 가장 훌륭하다. 동빙고가 있는 동부 이촌동 아파트 단지상가의 카페와 식당들을 보고 나는 괜히 분개했다. "아니 시발 집 1층에 동빙고가 있는 것도 모자라서 김뿌라가 있는 건 좀 너무하지 않냐" 웃기위한 분개였으므로 웃었다.

보광동에서 양재 코스트코로 가는 길. 버스는 신사-논현-강남역을 가로질렀다. 인도에 북적이는 검은 머리통들. 차도를 가득 매운 붉은 미등들. 서로를 반사시키는 유리 외벽의 고층 빌딩들. 복학 첫 해 써야했던 레포트를 떠올렸다. '현대 사회의 바로크적 특성'을 찾아 쓰는 과제였는데, 한국 시와 이 고층 빌딩 중 무엇을 주제로 할까 고민했었다. 요즘 대학 인문학 강의들이 으레 그렇듯, 교수님은 과제를 아주 쉽게 수정해주셨는데 다른 거 됐고 "프레시오지떼"(사치스럽고 경박한 화려함)과 "뷔를레스크"(낯설고 이상한 것. 혼란스럽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것. 변신)라는 두 가지 특성에 집중해서 쓰라고 했었다. 결국 '주체가 사라진 포스트 모던 시대'의 빈약한 예시를 찾아내면 그만인 과제였다. 그리고 밤에도 야근으로 불을 꺼뜨리지 않으며 서로를 무한히 반사하는 종로 일대의 대기업 건물들이 주는 심상 같은 게 있었다. 결국 주체가 변신하고 사라지는 미래파 시인들의 시집을 주제로해서 썼지만. (나이들어 이런 걸 쓰면 영혼이 파.괘.된.다)


입장에서 계산가지 3시간이 넘게 걸려버렸다. 중간에 푸드코드 피자와 핫도그를 먹긴했다. 그래도 역시 와 좀 너무 한 것 아닌가 싶었지만 박물관으로 치환해보니 뭐 또 그 정도 걸릴만도? 각종 공산품들을 파는 1층에선 소파에도 앉아보고 접이식 의자도 펴보고 코렐 접시도 들었다 놔봤다. 지하의 식품관엔 아름다운 연어들, 청순한 소고기들, 술... 치즈... 각종 소스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냉동식품들. 그러나 우리는 할인하는 다우니 4리터와 에프킬라 전기 훈증기, 좀 싼 와인 두 병(맥주를 끊기 위함이다), 프레고 토마토 소스 3.6 킬로그람, 쯔유 1.8리터, 발사믹 소스(식초를 졸인 것) 정도만 샀다. 예산도 예산이고 짐도 짐이라 무리하지 않았다. 젊은 부부들은 카트가 넘치도록 생수며, 우리아이 술안주 우리남편 영양간식 등을 채워넣고 있었다. 우리는 부러움의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이 때 만큼은 결혼하고 싶기도 하단 대화를 나누었다. 하지만 역시 매일 4인 가족의 식사를 준비하는 건 할 짓이 못된다. 곰국이나 한 달 내내 먹겠지란 결론으로.

   그리하여 지금, 여기. 나의 새로운 욕망. 그건 거대한 냉장고... 그리고 코스트코 회원증... 사촌 언니들의 욕망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거대한 냉장고가 갖고 싶다보면 안정된 일자리를 구하고, 차 있는 파트너와 결혼하고,  ## 뉴타운에 입주하고 싶어지는 게 당연하다. 근데 나는 그 부분을 스킵하기 때문에 저 욕망이 완전 뜬 구름이 되어버린다. 5년 내로 1억 모으기 같은 것 보다 거대한 냉장고가 훨씬 추상적인 욕망의 대상인 것이다. 아무래도 타고난 그릇이 작은 것 같다. 그런데 일단 매일 커피 한 잔이라는 것도 실은 거대한 냉장고와 그리 먼 곳에 있는 욕망이 아니라서 이미 가랑이 찢어질 것 같이 힘든 뱁새입니다. 무제한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가 얼마나 고마운 포장지인지 아시나요?



아무튼 다음에 코스트코에 갈 땐 차없는 친구들 여럿이 모여 가서 사이좋게 대용량 상품들을 나눠야겠다. 기대된다. 문구류도 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