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9일 수요일

인터뷰 : 모두의 내일이 불안한 사회에서, 삶의 기반이 되어줄 기본소득 - 백희원(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운영위원)


녹색전환연구소와 한 인터뷰입니다. (2015.12.9 게시되었습니다)
전문은 여기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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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시와 서울시에서 각각 청년배당, 청년수당정책을 들고 나왔는데요. 기본소득을 주제로 오래 활동을 이어 온 입장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으신가요?

중앙정부에서 할 일을 안 해서 지방정부에서 나섰다고 생각해요. 정부에서 청년을 위해 내놓는 정책 중에 의미 있는 정책이 별로 없어요. 청년희망펀드 같은 것은 정책이라고 하기도 힘들고, 7월에 요란하게 발표한 청년고용절벽해소대책도 무조건 일자리 20만 개 늘리겠다는 말만 하는 데 양적 측면만 보고 질은 따지지 않으면 불안정 일자리만 늘어날 뿐이지요. 그런 일자리는 청년을 착취할 뿐이고요. 무엇보다도 일자리를 늘리는 주체는 정부가 아니고 기업인데 20만 개 계획 세우면 시장에 일자리가 뚝딱 생기는 것도 아니잖아요.

반면 두 정책은 청년들에게 직접적으로 돈을 준다는 점, 아주 실질적인 지원이라는 점에 충분히 의미부여를 할 수 있죠. 특히 성남시 청년배당정책은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더욱 그렇다고 생각하고요. 연 100만원이니 큰 금액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본소득 자체가 불가능할 거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지자체에서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저는 서울시 청년수당정책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대상이 중위소득 60% 이하의 '사회 밖 청년' 중 사회활동에의 의지가 있는 3,000여 명이고 최대 6개월 간 50만 원을 지급한다는 내용인데요. 자세히 보면 주 노동시간이 15시간 미만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습니다. 최저임금으로 계산해보면 월 30만원 좀 넘는데요. 청년수당이 필요한 청년들은 아마도 돈이 별로 없고, 좋은 일자리를 구해서 사회에 진입하고 싶으니 눈앞의 불안정한 일자리를 택하기보단 취업준비를 하며 사회 밖에 머무는 청년들이겠죠. 청년수당을 받으려면 아르바이트를 주 15시간 밖에 못하니까 한 달 소득이 80만 원정도로 제한되는 셈인데, 서울에 살면서 부모님 집에 살지 않는 가난한 청년이 '활동'까지 하면서 생활하기에 80만원이 충분한 금액은 아닌 것 같아요. 그리고 '사회 밖 청년'을 위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는 경력이 안정적인 메이저 일자리에 취직하는 데 불리한 낙인 효과를 불러일으키진 않을까하는 우려도 듭니다. 그럼 결국 정책대상과 실제 참여 가능한 대상, 그리고 효과가 맞아떨어지지 않는 거지요. 그럴 때 사각지대가 생기고요.

사실 근본적으로는 '사회 밖'이라는 규정 자체에 문제의식을 느껴요. 고용 없는 성장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사회 안' 자체가 불안정해지고 탈락하는 사람이 존재할 수밖에 없게 되었는데 오히려 '사회 밖'에서 새로운 관계, 시도들이 자리 잡는 것을 지원하는 것이 지금 시점에서는 적합하지 않을까요? 청년기는 삶에 대해 유연한 시기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삼포세대, 오포세대라는 문제의식에서 시작해 포기한 걸 복원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건 시대적으로 안 맞는 것 같아요.


앞서 성남시 청년배당 정책이 좀 더 기본소득에 근접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기본소득은 모두에게, 가난하든 부자든, 일을 하든 안하든, 개별적으로 지급하는 것인데요. 성남시 청년배당 정책은 해당 나이의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요구사항 없이 개별적으로 지급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기본소득에 접근해 있다고 생각해요. 완전한 기본소득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정책입니다.


기본소득 논의, 왜 시작되었을까요? 사회에 대한 핵심 문제의식이랄까..?

불평등의 심화죠. 건물 값은 오르고, 생활비도 오르고, 이중노동시장의 격차는 더 심화되니까 안정적인 일자리에 대한 경쟁은 더 심해지고, 원래 가진 게 많은 사람이 경쟁에서도 훨씬 유리하고요. 사회적으로 이 악순환을 전환시키기 위한 소득재분배의 열쇠로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이 커져가는 것 같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모두의 삶에 당연하게 자리 잡은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꼭 필요한 정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가난하지 않은 사람도, 괜찮은 직장 다니는 사람들도 모두 언제든 큰 병이나 실업 등으로 가난해질 수 있다는 불안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이 불안으로 인한, 보이지 않는 사회적 손실이 아주 크다고 생각하고요. 기존 복지시스템의 사회보험은 낸 만큼 돌려주는 거고, 공공부조는 피치 못하게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특정한 경우에만 내(정부)가 너에게 돈을 베풀어 줄게’죠. 한국은 그나마 다 보장해주지도 않고 정부 사정 되는 만큼만 도와준다는 식이고요. 반면 기본소득은 모든 사람이 처음부터 가난하지 않을 수 있도록 예방을 하는 정책이죠. 저는 자유가 안전과 함께 온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기본소득이 실현되어 생계의 안전이 보장될 경우 사람들이 삶에서 시도할 수 있는 게 다양해지고 이것이 사회가 진보할 수 있는 역동적인 환경을 조성할 거라고 생각하고요. 특히 변화를 반기는 청년 세대에게 더 그렇지 않을까요. 좀 창조경제 같네요.


기본소득으로 적절한 금액.. 워낙에 의견들이 다양한데.. 희원님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으세요?

제가 평생 서울에서만 살아봤는데요. 이번에 ‘함께 사는 돈 탐방기’ 진행하면서 여러 지방을 다니며 적정 금액을 물었어요. 서울에 사는 사람은 약 80~90만원 정도 이야기하고, 지방도시에 사는 사람은 약 50만원 정도면 되지 않을까 이야기하고, 여기에 더 시골로 들어가니 한 30만원 정도면 되지 않을까 말씀하시기도 하고. 그 차이가 어디서 오는 걸까 생각해봤는데, 평소 만나는 서울의 젊은 분들은 혼자 산다고 치고 일단 월세 3, 40만원, 교통비 10만 원 잡고 플러스 생활비로 계산을 하게 되는 거죠. 지방은 물가가 좀 싼 것도 있지만, 제가 만난 분들, 특히 귀농하신 분들은 속해 있는 공동체가 있으니 계산이 달라요. 월세는 나눠 내고, 식비도 같이 농사지어서 나눠 먹고, 30만원이면 빚 안지고 하고 싶은 유기농 농사 지을 수 있겠다고 하시는 거죠.

재원 마련 가능성을 생각하면 월 40만원 정도가 적당하죠. 지금 물가 생각하면 70~80만원 정도. 저도 예전에는 일인 생활자로서만 기본소득 적정금액을 생각했는데 요즘은 저와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을 모아 공동생활을 하고 협동조합을 만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면서 생활비를 줄이면 더 적은 금액도 괜찮지 않을까. 그리고 이렇게 지속적으로 예측 가능한 소득이 들어온다면 일은 몇 년에 한 번 정도 쉬거나, 1년에 6개월만 일하거나, 프리랜서를 택하거나, 아무튼 다양하게 생활을 구조조정해 볼 수 있겠죠. 호혜적으로 자원을 주고받는 관계를 더 늘리고... 여러 조합을 상상할 수 있으려면 최소 40만원에서 70만원 정도가 적절한 것 같습니다.


기본소득 관련 활동을 거의 3년 이상 해오고 있으신건데.. 이 활동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은 어디에서 찾고 있으신지?

잘 못하고 있는 게, 그게 원동력이 된달까. (웃음) 성과를 명확히 측정하기가 어려운 활동이지만 항상 아쉬움이 많아요. 조금만 더 잘 해보자, 다음엔 이것보단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 라는 생각에. 함께 일하는 친구들도 힘이 많이 되죠.

무엇보다 기본소득이란 아젠다 자체가 항상 새로운 주제를 제게 준다는 게 원동력이 돼요. 예를 들어 맨 처음엔 저 개인적인 욕구로 기본소득을 지지했어요. 제가 문과를 졸업했는데 그간 배운 것에 대해 시장에서 그 쓸모를 설명하기 어려운 거예요. 학부 때 읽던 바르트니 블랑쇼니 다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어요. 그치만 기본소득을 받으면 내가 나를 완전히 노동시장의 '니즈'에 맞춰 설명하고 변명할 필요는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지지하기 시작하니까 이제는 남들을 설득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사회적으로 이게 왜 필요한지를 생각하면서 잘 모르던 주제에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예컨대 노동시간 단축, 일자리 재분배를 실현하기 위해 기본소득이 필요하다 설득할 수 있죠. 요즘 관심 있는 건 한국 복지 시스템의 낙후성이에요. 한국사회의 비합리성의 전형적인 패턴을 볼 수 있어요. 복지는 현장에서 당사자에게 정말 필요한 도움이 잘 전달될 때 빛을 발하는 건데... 당사자 분들 만나면서 더 문제의식을 느끼게 되었는데, 이게 정말 잘 안 되어 있더라고요. 심사과정에서 불이익 당하는 사람도 많고. 또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에 대한 노동대우도 안좋고요. 이런 식으로 기본소득의 설득 근거를 찾다보면 새로운 주제에 관심이 생기고 연결된 또 다른 주제를 보게 되는 루틴이 반복돼요. 이런 게 매력적이죠.


희원 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지금 희원님의 모습과는 어떻게 연결되는지 생각해 본 적 있으세요?

정말 개인적인 이야기인데, 저는 어렸을 때부터 뭘 갖고 싶거나, 하고 싶거나, 이기고 싶거나 이런 게 별로 없었어요. 심지어 식욕도 별로 없고.(웃음) 다만 ‘남에게 해 끼치며 살기는 싫다’ 이 정도 욕망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머리가 크고 보니 평범한 생활만으로도 누군가를 착취하는 구조에 살고 있더라고요. 제 머릿 속에서 가장 최근 업데이트 된 버전의 설명은 개개인에게 주어진 자원이 너무 부족해서 없는 사람들끼리 서로 뺏고 뺏기는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는 건데요. 예를 들면 끝도 없는데, 그 동안 쌀값이 안 오를 수 있었던 건 농민 분들이 빚을 지면서까지 대규모 농업을 했기 때문이고, 도서 당일택배가 가능한 건 택배 단가가 너무 낮기 때문이고. 그런데 여기서 농민이나 택배 노동자 분들 손을 들어줘서 물가가 오르면 저소득층이 가장 피해를 보겠지요. 저부터도 돈을 많이 벌지 못하니까 최대한 싼 물건 사려고 노력하고요. 이런 구조 자체가 싫었어요. 내 가치관을 지키고 싶어도 지킬 수 없는 상황이랄까. 기본소득이 이 문제에 대한 절반의 답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최소한의 생계를 사회가 보장하자는 이야기니까요. 나머지 반은 윤리의 문제일 거고요.

그리고 기본소득 운동하면서 제가 많이 바뀌었는데... 저는 기본소득 운동하면서 욕망을 배웠어요. 기본소득을 실현시키기 위한 사회적 영향력을 가지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으니까요. 아직도 이 상태에 완전히 적응하지는 못했지만. 아무튼 다른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서, 사회화 된 말의 작용에 대해서도 더 잘 이해하게 되었고요.


기본소득이라면 충분히 사회문제 공론화의 장이 될 수 있겠다 확신하게 된 계기가 혹시 있으실지..?

기본소득이 실현되면 사회가 어떻게 변할지를 완전히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약자의 힘이 강화될 거라 확신해요. 인상 깊은 사례가 있었는데... 거리에서 지나가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기본소득 주면 뭐 하겠냐고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었거든요. 한 중년 여성분이 신나게 말씀하시길, "이혼한다!"고. 그 순간 아 가장보다는 여성, 청소년.. 가부장에게 경제적으로 종속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갖는 효용이 더 크겠구나 하는 게 확 와닿았어요. 이런 양상이 다른 영역들에도 적용 되겠다 생각했어요. 실제로 요즘 진행 중인 "내가 기본소득을 받는다면"(http://imaginebasicincome.com) 웹 캠페인에도 질 나쁜 일자리를 거부하겠다는 응답이 가장 많이 올라오고 있고요. 가정에서, 노동시장에서, 정치적 권력행사로 이어지는 경제적 종속관계가 약화될 거라는 거죠.

그리고 기본소득의 실행에 대한 논의는 '한 사회에서 어떻게 모든 사회구성원이 동등한 권리를 가지는 공공의 자원을 구성하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제가 아는 한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어요. 기본소득은 돈 얘기니까 눈에 보이는 구체화 된 숫자들로 이 문제를 논의하게 되겠지요.


마지막으로 기본소득, 될 것 같나요? (웃음)

네. 제가 기본소득 운동을 하게 된 데는 비관적인 성격 탓도 있어요. 세상이 너무 안 좋아서 이 정도로 강력하고 종합적인 처치가 아니면 사회문제가 해결이 안 되겠다고 생각한 거죠. 요즘 유행하는 흙수저, 금수저 이런 단어만 봐도 사람들이 기본소득을 필요로 할 마음의 준비는 된 것 같아요. 2012년까지만 해도 미래 후손을 위해 하는 거라고 농담했었는데요. 기본소득 논의가 전세계적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거든요. 핀란드는 집권당에서 기본소득 계획 발표도 했고. 한국도 성남시에서 청년배당 얘기 꺼냈고, 녹색당에서도 당론으로 채택하고 열심히 공론화하고 있고요. 조금 신기했던 건 기본소득에 대해 긍정적으로 반응하던 분들이 지금까진 거의 예술 쪽 종사하는 분들, 생태문제에 관심이 많은 분들, 녹색평론 읽는 분들 정도였고 대개는 부정적이었거든요. 그런데 이재명 시장이 한다고 하니까 야권 지지자 분들이 기본소득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사람들 생각이 변하는 경로는 여러가지구나, 나는 지금까지 이걸 왜 해야 하는지 논리적으로 한 스테이지 씩 클리어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합리적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구나, 어디서 이게 더 확산될지 모르는 것이구나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오히려 희망적이라고 생각해요. 다양한 방법을 취해보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