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15일 목요일

'청년에 의한 정책'에 대한 메모

* 2015년 10월 15일 열린 <청년정책 2015 토론회>의 발제문입니다.
행사에 대한 상세정보와 전체 자료집을 위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청년이 사회안전망에 대해 말하자

‘88만원 세대’ 담론의 등장 이후 고용, 결혼 등 사회재생산의 맥락에서 청년이 문제적 주체로 떠오른 지 오래되었으나 그간 중앙정부의 청년 정책은 공급자 중심의 단기적인 일자리 수 확보에 그쳤다. 누적된 문제들을 두고 현 정부는 ‘노동개혁’의 기치 아래 ‘청년희망펀드’같은 홍보성 정책과 함께 신규고용창출의 해법으로 임금피크제와 일반해고 허용이라는 근거 없는 답을 제시하고 있다. 사회안전망 없이 사용자 측의 노동유연성만을 강화하는 정책 기조는 일자리 문제를 오히려 심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반면 지역 정부에서는 실질적인 청년 정책 논의가 활발하게 시작되고 있다.

우선 성남시에서 도입 의사를 밝힌 “청년배당”은 19세에서 24세의 모든 성남시민에게 여타 조건없이 월 100만 원 가량을 지급하는 일종의 부분 기본소득이다. 기본소득은 보편적 소득보장정책으로, “자산심사나 노동요구 없이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개별적으로 지급되는 소득”으로 정의된다.(BIEN) 서울시 청년허브에서 제안한 “서울청년(활동)수당”을 포함한 “청년보장(youth guarantee)”은 사회에서 배제된 청년들을 대상으로 월 50만 원의 활동비와 사회 참여의 장을 제공한다. 사회통합을 위해 보조금과 사회서비스를 함께 제공하는 선별적인 통합패키지이다. 두 정책 모두 청년에게 직접 자원을 제공하는 안으로 반가운 관점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이 두 정책을 둘러싼 논의는 청년 문제 뿐 아니라 앞으로 한국에서 복지정책이 발전해야 하는 방향에 있어서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이 글에서는 여기에 주안점을 두고 생각을 전개해나가려 한다. 성남시의 청년배당은 연 100만 원, 월로 환산하면 8만 원 정도를 지역 화폐로 지급한다. 액수도 적고 사용처에 제약을 갖고 있지만, 사회적 공유자산에 대한 청년의 보편적 권리를 인정하고 무조건적으로 자원을 지급한다는 점에서 기본소득의 철학과 원리를 공유하고 있다는 의의가 있다. 한국에서도 기본소득이 아이디어를 넘어 실현 가능한 제도로서 논의의 장에 오르게 된 것이다.

청년허브가 서울시에 제안한 청년보장은 중간지원조직에서 관에 제안하는, 즉, 아래로부터 구성된 정책제안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관과 현장을 연결하며 청년들의 복지수요가 단순 일자리가 아니라 관계, 기회 등 다면적인 차원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직접 보고, 문제의식을 느껴온 청년허브의 경험이 보조금, 공간, 프로그램을 함께 제공하도록 설계된 정책의 세부에 녹아있다. 연 5,000여명의 ‘사회 밖 청년’들에게 최소 2개월에서 최대 12개월까지 월 50만 원의 활동비를 지원 하자는 계획이다.

청년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공감대는 형성되어 있다. 이 자리에서는 ‘어떻게’의 문제를 얘기하자고 제안하고 싶다. 보편적 현금지급과 선별적 통합패키지. 나는 기본소득 정책의 지지자로서 전자를 지지하는 입장이다. 청년배당에 내재한 보편성, 무조건성, 개별성이라는 원리가 앞으로 한국사회의 복지가 확충되는 과정 전반에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조건 보편의 원리가 옳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이 한국사회가 직면한 특수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에 있어서 더 합리적인 방향성을 제안하고, 비용의 문제에 있어서도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왜곡된 복지시스템에서는 조건 없이 주는 것이 낫다

한국의 경제성장은 정부가 깊이 개입해온 국가주의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복지정책의 발전경로도 이와 연동되어 ‘선성장 후분배’의 원칙에 따라 최소한의 선별적 공공부조 정책 위주로 도입되어 왔다. 한국 복지의 모순적인 점은 국가의 복지지출 수준은 낮은 편, 즉 작은 정부임에도 불구하고 복지를 시행하고 전달하는 과정에서는 관의 힘이 강력하다는 점이다.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 통제권은 휘두르려고 하는 모양은 일상에서 곧잘 마주해온 권위주의의 비합리성과 꼭 닮았다. 경험상 이러한 패턴은 복지정책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관의 지원을 받거나 함께 일하는 것의 피로감에 대해서는 사회 전반에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이러한 연유로 사회안전망 구축의 길은 두 가지 어려운 과제를 던져준다. 우선, 재정을 확보하여 제도를 확충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권위주의적인 관료제에서 작동하는 복지 전달 인프라를 혁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산과 제도는 가시적이지만, 조직문화나 의사소통방식과 같은 인프라는 눈에 드러나 보이지 않고 그만큼 변화시키기 어렵기 때문에 전자보다도 후자가 어려운 문제이다. 특히 선별적 복지정책을 도입할 때는 상대적으로 후자의 문제가 더 심각해지는데, 조건과 상황을 따지는 과정에서 관이 수급대상자에게 더 깊이 개입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일련의 과정이 공급자 중심으로 진행될 경우 복지는 효용을 발휘해야 할 현장에서 실패하기 십상이다.

일례로 지난 5월 동자동 쪽방촌에서 만난 한 기초생활수급자 분은 "국가가 자꾸 빈곤층을 '일하지 않는 사람'으로 만든다“며 다음과 같은 사정을 털어놓으셨다. 수급자들이 몸이 아파 정기적인 일을 하기 어려운데, 비정기적인 노동으로 벌어들일 수 있는 돈 2, 30만원은 ‘소득인정’이 되어 다음 달 생계급여에서 고스란히 깎여 나간다는 것이다. 결국 아무 일도 못하게 되고 “소비활동에도 생산 활동에도 참여할 수 없는” 무기력한 생활에 갇히게 된다. 빈곤층의 자활을 돕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사실상 빈곤을 지속시키는 기제로 작동하며 현장에서 실패한 정책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앞에 이야기한 ‘선성장 후분배’ 프레임 속에 발전해 온 한국복지의 맥락과도 닿아있다. 복지예산을 효과성에 근거 해 정하는 것이 아니라, 예산 사정에 따라 결정하고, 이에 맞춰 집행과정에서 수급대상자 수를 재단하기 때문이다. 부양의무제라는 악법을 유지하며 맞춤형복지라는 이름 아래 복지제도의 조건이 더 복잡해지는 이유도 여기 있다. (이런 맥락에서 제안된 청년배당 정책에서 참여제외의 조건에 주 15시간 이상 노동이 들어간 기준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IMF 경제위기 이후 중산층의 계층하락이 계속되고 있고, 국가가 정한 기준으로 계산해 봐도 빈곤층의 수가 300만 명을 상회하는데 기초생활수급자 수는 약 130만 명 정도에 불과하다. 이러한 정책의사결정 방식을 변화시키지 않고 복지의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는 없다. 한국의 권위주의적인 조직문화는 선별적 복지정책의 집행과정에서 무능으로 나타난다.

이상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한국의 복지전달체계는 공급자 중심의 일방적이고 비효율적인 경로로 형성되었고, 이러한 복지인프라는 변화시키기가 어렵기 때문에, 정책 설계 과정에서 애초에 조건을 삭제함으로서 복지 전달 과정에 관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인프라 혁신의 측면에서도 개인들에게 직접 자원을 지급하는 편이 더 낫다는 의견을 덧붙인다. 조직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이고, 정부 기관이라면 더욱 그렇다. 조직 내부 혁신을 통해 인프라가 변화 할 가능성은 무척 낮다. 따라서 개인들에게 자원을 지급함으로서 정부와 개인들 간의 의존관계를 변화시키고 개인들의 발언권을 강화해 외부의 압력이 기능하게 만드는 편이 더 합리적일 것이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최선의 예방은 개인들을 지원하는 것

2015년 한국사회가 놓여있는 시대적 상황은 지금까지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해방 이후 한국사회가 따라잡아야 할 미래는 줄곧 서구에 선진국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었다. 처음에 그 미래는 눈에 아주 잘 보이는 형태였다. 국가라는 컨트롤 타워의 지시에 따라 도로를 깔고, 교량을 짓고, 높은 빌딩을 짓고, 수출량을 달성하는 것으로 따라잡을 수 있는 청사진이었다. 반면 “저녁이 있는 삶”정도의 슬로건이 가장 구체적인 심상이었던 ‘삶의 질’, 즉, 복지라는 것은 좀처럼 달성하기 어려웠다. 제도는 덜 뚜렷한 것이었고, 성장 동력이 떨어져가던 시점에서야 그 필요성을 주목받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미래는 미처 따라잡지 못한 채, 오늘 날 우리가 직면한 미래는 정말로 어둠 속에 있다. 예측 불가능한 미래는 ‘선진국’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미래 예측과 관련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제는 고령화, 일자리를 위협하는 기술발전, 에너지 자원 문제로, 불확실성을 증폭시킬 요인들이다. 이 시대를 살아나가야 할 청년들은 미래의 비전을 모방이 아니라 창안해 내야 한다. 전례 없는 어려운 과제다. 국가가 성과목표를 지시하는 몇 개년 계획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일자리 정책의 실패가 이미 한 사례다. 기업 및 기관에 일자리 수를 늘리라고 지시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구보다도 이 문제를 간절하게 해결하고 싶은 이들, 즉 문제의 당사자들에게 직접 자원을 지원하는 것이 이 복잡한 문제를 가장 잘 풀어나갈 수 있는 방법이지 않을까?

일자리 문제 뿐 아니라 앞에 이야기 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대처와 비전도 나는 같은 방법, 즉 개인들에게 자원을 지원해 역동성을 촉진하는 것이 사회의 문제 해결력을 제고한다는 가설을 갖고 있다. 특히 청년들에게 불확실성은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역량을 펼칠 기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상황은 다음 세대가 새로운 기술을 학습하고, 낡은 관습과 결별하고, 사회의 방향성을 주도할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불확실성은 기회보다 불안으로 인식된다. ‘삼포세대’ 같은 말은 더 이상 기존의 사회재생산 체제가 안정적으로 작동하지 못한다는 것이 개인의 삶에 어떤 절망과 불안으로 나타나고 있는지 보여준다. 여기서 청년은 ‘포기’하는 존재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기존 체제가 안정적인 중산층의 삶을 제공하는 역할만 한 것은 아니다. 이 사회재생산 체제의 동력에는 이중노동시장의 강화, 가족주의와 성차별 문화의 재생산, 과도한 사교육 같은 요소들도 포함되어 있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진일보한 삶으로 나아가기 위한 기회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기회를 인식하기엔 지금 개개인들이 놓인 현실은 너무 가혹하다. 한국인의 81%가 직장 선택 시 소득과 안정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OECD 평균 53.7%) 첫 직장에서 정규직 자리를 얻지 못하면 더 힘들어질 미래가 명약관화한데 당장의 좋은 학교, 좋은 직장을 위한 경쟁에 뛰어들지 않을 도리가 없다. 장시간에 걸쳐 스킬을 익히기보다는 일단 필요한 스펙부터 쌓고, 지지 않기 위한 요령을 구하게 된다. 필요한 만큼만 쌓은 스펙은 자신감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불안감 속에서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노력은 삶에 대한 근본적인 의욕 자체를 소진시킨다. (인구 수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한 세대가 축적되는 성과 없이 이 무력감을 학습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위험요소 중 하나다. 이 세대가 불확실한 미래를 넘어가야 할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무력감은 심리적인 문제이지만 ‘힐링’이나 ‘계몽’은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근본적인 문제는 미래를 전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를 버티느라 미래를 무시하는 것은 시간을 빚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미래에 예측 가능한 상수를 제공해야 한다. 기본소득이 제안하는 사회안전판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나가며 : 청년의 정치와 정책

지금도 종종 쓰이는 말이지만 2000년대 중반에 ‘캥거루족’이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고생 모르고 자라서 부모 품을 벗어날 줄 모르는 청년세대를 경멸을 담아 부르는 단어였다. 2007년, <88만원 세대>가 나오고, 반값 등록금 이슈가 점화 되고, 청년이 처한 현실이 공론화되면서 이제 청년은 일자리도 없고 자원도 없고 연애도 못하는 안쓰러운 존재로 자리 잡은 것 같다. 이 프레임은 지원을 요구하면서, 청년들이 스스로를 무력한 존재, 도움이 필요한 존재로 설명하게 만든다. 여기서 얻어낸 것들이 있고, 여전히 얻어낼 수 있는 것들이 있으며, ‘삼포세대’라는 언어는 편리하지만 한계도 그만큼 명확하다. 이제는 주변적 위치에서 중심으로 이동할 때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이제 청년이 사회 전반에 대해 말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이전에는 이러한 발화가 앞 세대의 담론에 동원될 위험이 있었지만, 지금까지 청년이 청년 스스로에 대해 충분히 말하고 구분해왔기 때문에 독립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성남시의 청년배당은, 청년이 정책을 경유해 사회적 전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이다. 보편적 기본소득이라는 거시정책의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이것을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가장 우선순위의 위에 있는 당사자로 청년을 지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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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을 덧붙이자니 좀 민망하지만, 아무튼 길이에 비해서 꽤 장황한 글이 되었는데 디테일을 발전시키기 위한 조언을 언제나 환영합니다. 한국 복지시스템에 대한 주요 레퍼런스는 <빈곤을 보는 눈>(신명호, 2013)과 인권위의 사회복지사 인권상황 실태조사(2013), 양재진(2008), 송다영(2014)인데, 사회복지 분야에서 이 분들이 어떤 입장과 위치에 있는지 지형을 파악하지 못하고 읽은 것이라 놓친 부분도 있을 것 같아요. 마찬가지로 비판과 조언을 기다립니다. _ 2016.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