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27일 수요일

나의 선의

   나는 모든 일을 가능한 지체시키고 싶어하며, 가능한 작은 점으로 수렴해 웅크리고 싶어한다. 짧은 생 내내 그래왔다. 알고 있었지만, 과거지향적이며 만사를 내부로 수렴시키는 이 수동적 태도가 이 정도로 적극적인 욕망을 통해 발현되는 것인 줄은 몰랐다. 뭐냐면, 나는 아주 많은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꼼짝않고 싶어진다. 매 초 마다. 매일 매일.

꼼짝도 하고 싶지 않은 욕망이라고 하면 궤변같아 보일 것이다. 그러니까 여기다 쓰고 있다. 그러나 팽창하는 우주에는 블랙홀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 두자.

아무튼 새삼 이로 인해 괴로운 까닭은 요즘 하는 일이란 게 순 남들한테 연락해서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관계를 사방으로 늘리는 일을 하는데 순조롭게 진행될 때 조차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의도를 감추느라 허름한 레이어를 몇 겹 둘러싼 마음은 하루만 지나도 너덜너덜.

   그러다 생각한다. 나는 스스로의 선의를 좀 믿자. 타인에게 증명해보이려 할 것 까지는 없다해도, 나 자신은 나의 선의를 믿자고. 남들이 어떻게 꼬아서 올려 보든 내려 보든 간에 그냥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내 선의를 보아주자고. 정말이지 나는, 우리는 얼마나 선량한 마음으로 이 일에 임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런데도 어째서 떳떳한 표정을 짓고있지 못한 걸까. 언제나 비굴하게 쭈뼛대고야 마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늘은 서칭을 하다가 프랑스 기본소득 포털 사이트 운영자의 개인 블로그에 들어가게 되었다. '셀프 인터뷰'로 이루어진 자기 소개를 읽었다. 그는 24세의 청년으로 생각보다 젊었다. 그랑제꼴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엘리트. 지금은 공동경제, 공유경제를 키워드로 한 웹진의 치프 에디터이자, 유럽 기본소득 시민 발의안의 주요 조직가들 중 한 명이다. 요즘에는 배낭 메고 세계 각지에서 머물며 살고 있다고 한다. 자신의 목표는 다음 세대에게 더 나은 세계를 물려주는 것이며, 그래서 더 발전된 자유를 담보할 수 있는 머니-시스템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내가 어디에 가서 저는 다음 세대에게 더 나은 세계를 물려주고자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것은 진실이다. 나는 모두에게 더 나은 세계를 만들고 싶어서 이 일을 하고 있다. 정말 그렇다. 어째서 모른 척 해왔을까.

......아마 당위를 당당히 내세우기엔 이 사회가 이해 관계 당사자로써의 입장조차 세우는 게 일반화되어있지 않은 곳이라서 그렇겠지. 당위가 아니라 욕망 때문에 이 운동을 한다는 화법이 더 시급했던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위치를 알고나면 욕망이 곧 당위고, 당위가 곧 욕망이 된다. 아무튼 나는 이 몰락감 가득한 세상에서 나와 당신의 더 나은 삶을 위하는 방향으로 삶을 조정해나가고 있다.

일단 체력을 좀 키워야겠지만 말이다.

2013년 11월 16일 토요일

젊은 엄마들.

   가구 전시장에 이어 유아교육전에서 행사보조 알바를 했다. 젊은 엄마들, 예비엄마들로 붐볐다. 코치, 토라버치, 칸켄백의 거대한 웨이브 속에서 나는 몇 가지를 발견했다. 1) 미취업 기혼여성들의 미인 빈도수가 높다. 2) 모든 엄마들은 멋진 팔뚝을 갖고있다. 3) 그러나 엄마들의 미모 격차는 어린 미혼 여성들 간의 그것보다 훨씬 크다. 4) 요즘 아가들의 옷은 정말 예쁘다.

이 엄마들의 미모는 뼈대부터 다르다. 이마와 콧날이 반듯하고, 눈매가 선명하고, 피부는 맑다. 대개 화장기 없이 수수하며 앞머리 없이 어깨를 살짝 넘는 생머리. 옷은 기본 화이트 톤에 카키, 블루, 오렌지 정도로 어쨌거나 세련되고 편안한 배색. 질 좋은 린넨 같은 것으로 된 걸 입고 있었다. 또 하나 특징은 얼굴에 새겨진 표정이 없다는 것으로, 대개 멍하고 무심한 낯들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심하고 자연스럽게 제품에 대해 묻고 평가했다. 소비 전문가들.

한편, 분명 같은 나이대 같은데 나 어릴 적 아주머니들과 별 다를 바 없는 엄마들도 많았다. 부은 몸, 피로가 역력한 얼굴, 삐져나온 머리. 기혼 여성들의 빈부 차는 미혼 여성들 간의 그것과는 비교도 안되게 확연히 드러난다.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