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31일 금요일

작년에 새롭게 얻은 것으로 두통이 있다

작년에 새롭게 얻은 것으로 두통이 있다. 스트레스가 곧장 물리적 통증으로 나타나는 것이 여전히 신기한 감각이다. 어릴 때 부터 신경성 소화불량이 있어왔기는 했지만 복통과 두통은 확실히 다른 느낌. 두통은 언어화된 감정들의 직접공격 같다. 그 순간 머리 속에 차오른 울화의 언어들이 엉키고 마찰하며 연소해버리는 것 같달까. 그 과정에서 열이 나면서 머리 양 끝 지점이 지끈지끈. 한편 복통은 좀 모호하고 뭉근한 통증이다. 어디 가야하거나 새로운 환경에 던져지면 배가 아팠는데, 좀 끼워맞추기 같지만 정체불명의 불안이 원인이기 때문에 두통과는 달리 모호한 통증으로 나타났던 것은 아닐까.


잠들었다 일어나서 이어쓴다. 어제는 두통으로 괴롭더니 오늘은 복통이 양반은 못된다는 듯 찾아왔다. 소화가 통 안되었다. 밀가루를 먹어서 그럴까. 곧 치통도 찾아올 것 같아서 두렵다.

요즘은 여유없음이 곧 희망없음으로 느껴지고, 엉망이다. 삶에 몰입이 되지 않는다. 몰입이 두렵다. 시간가는 줄 모르는게 두렵다. 사실 그래서 컴퓨터로 영화를 잘 못본다. 다 보고나면 러닝타임이 틀림없이 지나가 있을 거라는 게 두려워서. 30분 이상의 시간이 드는 일은 통제할 자신이 없다. 시작도 못하겠다. 그렇게 한 달 간 시계에서 눈을 못 땐 체로 아무것도 안하고 있었다. 문제가 있다. 

너무나 한심하다.

새벽에 잠들기 전, 프랑스에 있는 친구와 카톡으로 수다를 떨었다. 많은 사람들이 내게 상냥하고 관대하다. 미안한 마음보다 기쁨과 안도감이 앞섰다. 

한심하기 싫다. 

이를테면 나나난 키리코 만화 여주인공처럼 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미나미 큐타나 에릭 로메르의 여자들이 좋다. 

급화제전환. 에릭 로메르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홍상수도 좋아하겠네 하고 아는 체들을 한다. (당연하다) <생활의 발견>, <극장전>, <옥희의 영화>, <북촌방향> 밖에 안봤는데 맘이 환하게 좋은 작품은 딱히 없었다. 만듦새의 기이한 훌륭함도 스스로 설명이 안되어 약간 껄끄러움이 남아있다. (이건 좋은 거다.) <하하하>가 제일 재미있다고 해서 언젠가 보게 될 날을 기대중이다. 로메르와 홍상수는 비슷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다른 점이 더 부각된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더 길게 얘기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일단 지금 할 수 있는 메모는 이런 인상비평: 로메르의 인물들은 귀엽지만 그가 사람들을 귀여워하지는 않는 것 같다. 홍상수는 사람들을 귀여워하고 그의 인물들은 찌질하다. 로메르의 영화는 문학적이다. 물론 문학으로 치환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영화의 속성을 활용해서 문학적 심상을 남긴다는 것. '영화는 새로운 문학이다' 같은 표현도 무리없이 허락될 것 같다. 홍상수의 영화는 모든 요소가 영화라는 장르로써만 설명된다는 맥락에서 유독 영화적이다.

2013년 5월 28일 화요일

월세를 송금했다

월세를 송금했다. 이사온지 만 한 달이다. 오전에는 주문한지 10일만에 드디어 의자가 왔다. 방정리에 일단 종지부를 찍은 느낌. 조립식 데스크 2만 7천원. 접이식 의자 1만 2천원. 하필 이사와 동시에 직장을 그만두게 된 덕분에 돈 없어서 죽을 것 같았는데 말도 안되게 싼 공산품들 덕분에 살았다. 다이소, 이케아, 소프시스, 중국, 인터넷 쇼핑 만세. 왕자행거 2만원 대, 책장 6만원 대, 40와트 전구 스탠드 2만 2천원? , 2.0채널 스피커 1만 5천원. 다 정말 예상보다 싼 값. 이불솜, 커튼, 서랍이 아쉽지만 당장 급한 건 아니고 내 기분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도 아니니까 괜찮다.

오후에는 작년에 모 언론사에 보냈던 자기소개서를 다시 읽어보았다. 나의 빈약한 구직활동. 제법 번듯한 문화/진보언론 세 군데 정도에 지원한 게 전부였는데(토익 점수가 없어서 달리 쓸 곳도 없었다) 하나는 필기에서 똑 떨어지고, 두 개는 면접을 개운하게 망쳤다. 


#1. 면접 중인 회의실

면접관: 본인의 장점은 뭐가 있죠?
나: 제 장점이요? (정지)
면접관: (약간 당황한듯) 음 주변 사람들이 말해주는 장점이라도?
나: 아 어. 귀엽다고들 하는데...요...

몇은 어이없다는 듯, 몇은 귀엽다는 듯 웃는다. 

거의 무례했구나. 자소서는 지금 보기에도 적당히 잘썼다. 명료하고, 짧고, 촌스럽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너무 끼부리지는 않았고, 레토릭은 전형에서 벗어나있지만 가족관계, 성장과정, 성격, 활동경력 등 아무튼 자소서에 포함되어야 할 요소들은 전부 들어가 있다. 아부도 제법, 허세도 제법이다. 물론 지금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번듯한 진보언론에 지원할 게 아니니까. 마지막 면접자리에서는 편집장으로부터 초장부터 "별로 기자가 될 생각이 없나봐요?"라는 질문을 받곤 당황해서 아 아닌데요라고 더듬거렸었다. 얼굴에 써있나 싶었다. 맞아요. 저 별로 기자 되고 싶지 않은데 고를 수 있는 번듯한 선택지가 이정도였어요. 같잖은 언론인 사명감 같은 걸로 무장한 멍청한 언시생들 너무 싫어서 언시판에 얼씬도 않았어요. 

음? 좆도 모르는 애송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데?

각잡고 무난한 자소서나 써야겠다. 저녁에 무일푼 아이쇼핑을 했더니 구직에의 의욕이 조금 높아졌다. 생활을 꾸려나가는 데에 이토록 게으르다니, 부끄러운 일이다. 그런데 부끄러운 기분이 들지 않는다. 염치가 많이 사라진 모양이다. 걱정이 된다. 나에게 염치는 그 역할과 비중으로 치자면 어제 일기에 썼던 언니의 '낭만'에 견줄만한 것이다. 이전에 나는 염치에 기대어 많은 것을 안했고, 어떤 것들을 해냈었는데 이젠 그냥 일차원적인 두려움만 남아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 염치를 되찾으려 하기 보다는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용기를 끌어내야 한다. 아니 다 개소리인 듯. 닥치고 니 엿같은 자소서나 쓰란 말이야.

정말 그래야겠다. 일기는 3일 째 매일 쓰고 있네. 맥주를 마시면서 써도 된다는게 참 좋다. 의식의 흐름..... 좋아하니? ^^ 나는 좋아해. 쓰는 것만. 하하. 재활치료 성과있어서 조만간 의식의 흐름 말고 감각의 조립과 같은 리뷰도 쓸 수 있게 되기를. 최근에 극장에선 <위대한 개츠비>, <비포 미드나잇>을 보았고 컴퓨터로는 로메르의 <내 친구의 남자친구>를 보았다. 셋 다 할 말이 있다. 

2013년 5월 26일 일요일

재활치료를 받는 듯한 감각으로 일기를 쓴다.

재활치료를 받는 듯한 감각으로 일기를 쓴다. 일단은 목적없이 그냥 글쓰기. 글자들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블록쌓기하듯이. 영향력도 의미도 없다는 게 너무 마음 편하다. 하 세상에 어쩜 이렇게 연약한지? 그러고보면 SNS로 온갖 쓸데 없는 말은 다 하면서 매체에 나간 내 글들을 제대로 홍보한 적은 없다. 자격 없네.


이런 면에서 나보다 백배 자격있는 옛동료/친구가 '환멸'이란 단어의 뜻이 환상의 멸망이더라는 얘기를 페이스북에 올려놓았다. 그렇다면 환멸을 느껴본 적이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이겠지. 나는 보기와는 달리(?) 정도 없고 낭만도 없다. 귀여운 것,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고 한 때 조악한 미문 필터를 손가락에 끼우고 살았던 탓인지 '따뜻하고 투명하다'는 오해를 산 바 있으나, 주여 저는 맹세코 눈 먼 사랑도 보헴의 삶도 어른의 자유도 꿈꿔본 적이 없다는 거 잘 아시지요? 프랑스로 어학연수 갈 때도 눈에 별 안띄웠다. 그저 불안에 볼만 홀쭉해졌었지.

그 때 가장 친했던, 지금도 프랑스에서 미술학교에 다니고 있는 언니가 얼마 전 페북 메시지로 자기 텀블러 주소를 넌지시 알려주었다. 이 블로그에도 링크시켜둔 내 텀블러와 같은 스킨을 쓰고 있었는데, 카테고리가 여러 개 있어 의아했다. 아아- 클릭해보니 새로운 텀블러 페이지가 뜨는 게 아닌가. 주소도 아예 다른... 그런 하위 카테고리=외부 링크=다른 계정을 한 10개 만들어 놓은 걸 보니 너무 언니다워서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슥싹슥싹 몸을 써서 직관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것들은 능하고, 뭐든 '예쁘게' 만들어놓지 않으면 성에 안차지만 논리적이고 구조적인 사고 기능은 거의 꺼두었던 언니. 정색한채 커튼치고 고독의 시간을 가지면서, 푼수끼도 다분했던 언니. 주름이 잔뜩 생기게 활짝 웃는 미인이었던 언니를 모두가 좋아했었다. 

눈여겨 보게 되는건 아무래도 2008-2013년까지 매 해의 사진들을 올려둔 페이지였다. 그 중 나와 함께한 2008, 2009년의 사진들이 가장 많은데 나에 대한 언니의 사소한 기억들이 꽤 많이 적혀있어서 약간 감동해버렸다. (나는 여전히 사랑받고 관심받는 데에서 어린아이 같은 쾌감을 느끼는 모양이다.) 언니는 나를 '녀석'이라고 칭하고 있다. '녀석은 종종 이쁜 그림자를 발견하면...' 뭐 이런 식으로. 아유 간지러워. >< 언니는 2008년 겨울의 사진을 올리며 '내 낭만은 다 어디로 갔을까'하고 있었다. 저런. 언니에게 낭만이 없다는 건 너무 서글픈 일이다. 작가로써는 괴롭기까지 한 일일 것이다. 어쩐지. 지난 작업의 일부를 나누어 받았을 때 노스탤지어에 기대있는 것 같았는데.

그러나 언니가 낭만을 되찾기 보다는 새로운 차원의 추동력을 얻기를 바랄 따름이다. 낭만을 품고 따뜻하게 타오르는 자아와의 이별은 통과의례같은 어려움이기도 하니까. 4년이나 지났으니 이제 내가 모르는 언니가 있겠지. 

언니가 내게 '너처럼 진실된 영혼'을 만나서 기쁘다는 편지를 써주었던게 기억난다. 당시 그런 말들은 나를 외롭고 기쁘게 했었는데... 다 어여쁜 기억이다. 우리는 서로 사진을 참 많이 찍어주었었다. 아무래도 사춘기나 여고생시절과는 별개로, '소녀시절'을 공유한 사이인 것이다. 떠올려보면 배경이 꽃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