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었다 일어나서 이어쓴다. 어제는 두통으로 괴롭더니 오늘은 복통이 양반은 못된다는 듯 찾아왔다. 소화가 통 안되었다. 밀가루를 먹어서 그럴까. 곧 치통도 찾아올 것 같아서 두렵다.
요즘은 여유없음이 곧 희망없음으로 느껴지고, 엉망이다. 삶에 몰입이 되지 않는다. 몰입이 두렵다. 시간가는 줄 모르는게 두렵다. 사실 그래서 컴퓨터로 영화를 잘 못본다. 다 보고나면 러닝타임이 틀림없이 지나가 있을 거라는 게 두려워서. 30분 이상의 시간이 드는 일은 통제할 자신이 없다. 시작도 못하겠다. 그렇게 한 달 간 시계에서 눈을 못 땐 체로 아무것도 안하고 있었다. 문제가 있다.
너무나 한심하다.
새벽에 잠들기 전, 프랑스에 있는 친구와 카톡으로 수다를 떨었다. 많은 사람들이 내게 상냥하고 관대하다. 미안한 마음보다 기쁨과 안도감이 앞섰다.
한심하기 싫다.
이를테면 나나난 키리코 만화 여주인공처럼 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미나미 큐타나 에릭 로메르의 여자들이 좋다.
급화제전환. 에릭 로메르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홍상수도 좋아하겠네 하고 아는 체들을 한다. (당연하다) <생활의 발견>, <극장전>, <옥희의 영화>, <북촌방향> 밖에 안봤는데 맘이 환하게 좋은 작품은 딱히 없었다. 만듦새의 기이한 훌륭함도 스스로 설명이 안되어 약간 껄끄러움이 남아있다. (이건 좋은 거다.) <하하하>가 제일 재미있다고 해서 언젠가 보게 될 날을 기대중이다. 로메르와 홍상수는 비슷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다른 점이 더 부각된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더 길게 얘기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일단 지금 할 수 있는 메모는 이런 인상비평: 로메르의 인물들은 귀엽지만 그가 사람들을 귀여워하지는 않는 것 같다. 홍상수는 사람들을 귀여워하고 그의 인물들은 찌질하다. 로메르의 영화는 문학적이다. 물론 문학으로 치환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영화의 속성을 활용해서 문학적 심상을 남긴다는 것. '영화는 새로운 문학이다' 같은 표현도 무리없이 허락될 것 같다. 홍상수의 영화는 모든 요소가 영화라는 장르로써만 설명된다는 맥락에서 유독 영화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