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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2일 수요일

중2는 기본권

요즘 나 자신에 대해서 내 좋을대로 설명하고 싶은 욕구가 되게 크다. 나 자신에 대해 설명이 요구되는 순간에 그러고 싶다는 뜻이 아니라, 그냥 나 자신에 대한 말이 계속 생산된다는 얘기임.

타인에게 자신을 투사하는 오류만큼이나 타인들의 모습을 자신에게 투사하는 오류도 조심해야 하는 것 같다. 반면교사와 반면교사로 이루어진 윤리는 약간 존재를 위협함.

남들이 그러는 걸 보는 게 좀 불편해서 나 또한 나 자신에 대해 설명하는 일을 남사스럽게 여기고 꺼려왔는데 최근에는 그냥 이건 좀... 일종의 기본권처럼 느껴짐. 사회적 존재로서 자기자신에 대해 스스로 규정하고 설명하고자 하는 욕구는 당연한 것이고, 설명하고 싶다면 설명하면 되는 것이다. 오직 내 뜻대로 설명하고자 시간을 들이는 게 죄악이 아니야. 타인들을 부정하는 일도 아니고. 사람들은 서로 그렇게까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지는 않다.

2016년 10월 19일 수요일

그 일은 전혀 사소하지 않습니다

트위터에 성폭력 경험에 대한 용기있는 진술들이 연이어 올라오고 있다. 일련의, 유사한 패턴의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 역시 지난 경험들 몇 가지가 성폭력이거나 그럴 위험에 처했던 '사건'들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 사건들을 말하는 데 나에겐 별 용기가 필요하지 않다. 인지한 뒤에도 별 일 아닌 사건들로 정리되었기 때문이다. 정말 운 좋게도 나는 별로 고통스럽지 않았다. 심각한 물리적 폭력은 동반되지 않았고, 그들이 내게 별로 중요한 사람이 아니었으며, 또 오랜 시간이 지난 일들이어서 그런 것 같다. 충분한 시간이 지난 뒤에 깨달은 것이다.

늘 나오는 얘기지만, 사회적으로 문제가 없는 이들이었고 친구거나 동료였다. 상황이 발생했을 때, 나는 이상함을 분명히 감지했음에도 모르는 채 넘어갔다. 사이가 어색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나서서 우스개 소리를 하기도 했다.

이렇게 처신할 수 있었던 건 내가 약자이지만, 강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에게 잘못을 알려주는 데 실패했다. 그렇다고 해도, 그런 이유로 어렸던 나의 유연함과 관용, 사람에 대한 신뢰를 후회하거나 탓하고 싶지는 않다. 그때 나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내 나름의 방식으로 나를 잘 지켰던 것이다. 내가 사람으로 여기고 지내왔던 사람에게 (사람을 그 외에 다른 어떤 방식으로 볼 수 있는지 나는 모르겠다) 만져보거나, 찔러보거나, 지배하기 위한 여체로 대상화되는 순간의 기분은 형언하기 어렵다.

아프진 않았지만 기억은 하고 있다. 그들은 분명 잊었을 것이다. 어째서인지 나는 결코 잊지 않았다. 이름도, 의미도 덧붙이지 않은 채 그 경험들을 보관하고 있었다. 바로 이 점이 늘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알겠다. 사실은 그때 더럽다고 느꼈다. 사실은 그때 눈 앞의 사람이 어쩌면 나쁜 사람인 게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그게 맞았다. 나는 제대로 판단하고, 나를 지지하고, 더 강해지기 위해서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다음 번에 나와 나의 동료 여성들에게 유사한 상황이 일어난다면 그때는 빠르게 인식하고 단호함으로 방어하고 공격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정말 신기하다. 왜 이걸 이제야 알았을까? 나는 나 자신에 대해 그렇게 눈치없는 사람이 아닌데. 그런데 아마 2,3년 전에만 깨달았어도 자책이 심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나는 내가 바보같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잘못은 그들이 했는데도. 지금은 앞에 적었듯, 나의 좋음이 나를 지켰다고 생각한다.

2016년에 내가 여성 시민들의 연대를 실감하고, 내 안에도 피해자/생존자를 지지하는 마음이 뚜렷한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미시적 의미의 공동체가 아닌) 사회라는 게 이런 거구나. 이런식으로 개인을 지지해주는 거구나, 정말 처음으로 실감해보는 것 같다. 어디로 나아가야 할 지 조금 알 것 같은 기분. 우리를 위해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2016년 7월 16일 토요일

7/15 올라온 조성주씨의 기본소득 반대 글을 빌미로, 진보진영에서 자주 보이는 기본소득에 대한 폄하적 레토릭에 대해


정의당 조성주 씨가 당 내에서 기본소득을 검토중이라며 자신은 이에 반대한다는 견해를 페북에 밝혔다.



스위스 국민투표, 이재명 성남시장, 김종인 더불어 민주당 대표를 거치며 기본소득이 "유행"(언젠가 버려질 거란 뜻이다)의 길을 걷기 시작한 듯한 지금, 솔직히 좀 반가운 말이다.

예컨대 올해 초 토론 자리에서 서로 다른 입장으로 만난 한 청년 활동가는 자신이 정책설계과정에 참여한 서울시 청년수당이 기본소득을 지향하고, 자신도 기본소득을 지지한다는 말을 해서 현장의 기본소득 지지자들로부터 환영 받았는데(당연히 그 뒤에 유보적 입장을 밝혔다. 딱히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다기 보단... 합리적으로 보이기 위한 유보처럼 보였는데), 솔직히 논의를 무척 비생산적인 프레임 땅따먹기로 만들어버려서 좀 실망스러웠다. 그 기저에 있는 심리는 조성주 씨의 글에 너무 잘 묘사되어 있다.

<<내가 기본소득을 반대하는 이유는 기본소득의 설계자체에 큰 이견이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현재 한국의 진보진영이 기본소득을 고려하게 된 배경에 의구심이 더 강하게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정의당이 기본소득을 검토하게 된 이유도, 서로가 더 진보적이라고 경쟁해야하는 상황에 처한 진보진영 내부가 언제부턴가 기본소득에 집착하기 시작한 이유도 결국은 선명성 경쟁이나 이슈선점의 의도가 더 강하기 때문이라고 나는 의심하고 있다. 보수정당들을 말하지 못하는(때로는 다른 진보정당은 말하지 못하는) 더 진보적이고 급진적인 것 처럼 보이는 것을 주장해야 한다는 강박.">> (이하 인용 <<>>표시)

동의한다. 제발 하겠다고 한 거나 잘 했으면. 정책 좀 이슈메이킹 불쏘시개로 갖다 쓰고 버리는 짓 좀 그만했으면.

그리고 이 외에는 의문이다.


1. 한국에서 기본소득 논의가 다른 복지정책 도입을 방해하는가?

조성주 씨는 기본소득보다 사회안전망의 획기적인 강화, 노동시장 내의 불평등의 완화, 복지체제의 확충 등이 더 시급하기 때문에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납득하지 못한다고 했는데, 이와 유사한 주장을 접할 때마다 나는 다음의 의문이 든다.
한국의 복지담론 지형에서, 기본소득이 다른 복지정책을 위협하는가?
핀란드에서, 기본소득은 기존의 사회보험 체제를 대체할 수 있다. 실리콘밸리가 주도하는 미국의 기본소득은 신자유주의적 프로그램이 될 수 있다. 그런데 공급자 중심으로 설계되어 복지정책의 양적 수준이 턱 없이 떨어지는 한국에서, 기본소득이 다른 복지정책을 위협하는가?

나는 한국에서 기본소득의 가장 큰 효과는 공공부조의 획기적인 확대와 정규직 비정규직 간 소득격차 및 사회안전망 격차의 완화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회안전망이라는 개념에 대한 찬반을 구하지 않고 사회안전판을 구성하는 좋은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이런 낙관적 가능성으로 인해, 여타 "시급한" 복지정책이 도입 될 순서(?)를 새치기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음 글쎄. 북유럽 '강소국가'가 참여정부에 의해 롤 모델로 상정되고 복지국가 담론이 개진된 지도 어언 10년이고, 무상(보편)급식 논의 이후 복지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도 형성되었지만, 획기적인 강화와 확충은 없었다. 증세에 대한 논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순서는 증세가 우선이라고 생각된다.

현 시점에서 나는 기본소득이 증세논의의 트리거로서 유의미하다고 생각한다. 모두에게 40만원? 5,000만명이면 1년 재원 240조? 계산이 쉽다. 기초노령연금이나 누리과정처럼 모른 척 넘어갈래야 못 넘어간다. 김종인 같은 정치인이 기본소득 얘기를 해서 반가운 거 딱 하나다. 그 정도 권력자에겐 증세의 책임도 끝까지 물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애초에 기본소득이 국가 주체의 공공서비스 및 복지를 현금 지급으로 대체함으로서 시장을 강화한다는 사고는, "정부"와 "시장"이라는 주체 중심의 사고라고 생각하는데, 복지 영역에서 한국정부는 적게 지급하면서 (시민을) 많이 통제하는, 서구중심의 이론으로 보면 기이한, 그러나 우리에겐 매우 친숙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꼭 그런 사고틀이 맞아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즉, 한국에서 공공서비스와 복지정책이 강화될 경우 그만큼 시민을 보호하는 동시에 통제하는 프로그램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이런 문제적 상황을 인정한다면 "기본소득"처럼 국가가 시민에게 충분히 지급하면서 시민을 적게 통제하는 정책은 "공공을 시장화"하는 것과 또 다른 효과를 가진다. 이런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국가, 시장 혹은 노, 사, 정 구조에 대한 메타포 외에 정책이 "현장"에 적용될 때 개인, 조직, 지역, 시장, 국가에서 어떻게 작동할 것인가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인데, 경험 상 (특정 부류의) 사회과학을 공부한 사람들이 이를 더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2. "하고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다"는 고민이 낭만적인 고민인가?

<<4.13총선 당시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정당들의 비례대표 후보들과 한 토론회에 나간적이 있다. 상호질문 시간이었는데 한 진보정당의 후보가 내가 주장하는 특수고용직 및 실업자까지 포함하는 고용보험의 획기적인 확대 등을 두고 '선별적 복지'를 주장하고 기본소득과 같은 보편적 복지를 반대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솔직히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었다. " 사람들에게 <실업>이란 것은 '꿈을 키우며 살고 싶어요', '하고싶은 것을 하며 사는 것' 따위로 이야기 될 만큼 낭만적이지도 않다! 그래서 실업에 대한 대책도 결코 아름답거나 예쁘지 않다!!"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었지만 꾹 참았다. "한 정당의 대표로 토론회에 나온 상대 후보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차리는 것은 그 정당을 지지하는 시민들에 대한 예의다"라고 한 한 후배의 말이 머리속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후배 때문에 정치하면서 조만간 화병이 날 것만 같다.
나는 여전히 궁금하다. 실업안전망의 확대를 주장하면 선별복지가 되는 것인가? 누구에게나 조건없이 '현금'으로 주는 것이 '보편적 복지'라는 것인가? 아직 진보진영의 복지관련 논의가 고작 이정도 수준에 머물러있다. 아니 돌아보면 선별복지/보편복지라는 프레임 자체가 진보의 실책이었는지도 모른다. ">>

이 부분에 등장하는 '선별적 복지'라는 워딩은 내가 봐도 별로 적절치 않다. 몇 가지 변호할 거리가 좀 있긴 한데 각설하고, 실업문제랑 일에서의 자아실현의 문제가 왜 충돌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기본소득을 얘기하면서 왜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지도 모르겠다. 서로서로 별 관련성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실업 문제는 심각하다. 자기돌봄 없는 노동환경도 심각하다. 무식하게 구분하면 전자는 경제적 문제고 후자는 문화적 문제다. 이 둘의 해결 방법은 별개의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어야 할텐데, 아예 관련이 없다고 할 수는 없겠다. 공급과잉의 노동시장에서 하고싶은 일을 찾아 직장을 때려치기의 리스크가 크다고 하기는 힘드니까.

그런데 왜 이 두 문제가 충돌하지? 차라리 상호보완적이지 않나? 억지로 끼워맞춰 보건대, "해고는 살인"인 구조조정 현장의 노동자들, 하청업체 파견직 노동자들과 "하고싶은 것을 하며 살고 싶어요"라고 폼재며 일을 때려치는 3%의 대기업 정규직이라는 이미지로 "현장"(당사자라는 단어로 대체 가능할 듯)을 구분하고 계시나? 전자의 냉혹한 현실은 모르면서 "꿈"이라는 한가한 얘기나 한다고? "실업안전망 확충"보다 "기본소득"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고? 분연히 화를 참으신 걸까?

'생존'과 '자아실현' 중 뭐가 중요하냐고 하면 아무래도 전자인데, 그렇다고 후자는 감히 전자와 나란히 논의되어서는 안되는 건가 하면 좀 애매하다. 그리고 애초에 남의 티끌만한 고통이라도 "낭만적"인 것 취급해도 되는 것인지? 생각은 자유지만 말로 뱉은 이상 비난을 피해가기 어려워 보인다. 일을 하면서 "갑질"을 요구받는 게 너무 괴로워서, 조직문화가 힘들어서, 야근 때문에 매일 울고, 면역체계가 망가져서 여기저기 아프고, 우울증에 걸리는 사람들을 너무나 많이 만났다. 그럼에도, 대안이 없고 불안하기 때문에 그런 일을 지속한다. 이 문제는 "현장"이 아닌가?

그리고 기본소득은 말할 것도 없이 실업의 위험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정책이기도 하다. 기본소득 지지자들로부터 "꿈"처럼 "아름답고 예쁜"(나는 이 한정사가 어느 정도 "윤리적으로 옳은"으로 등치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마음에는 든다. 역설법의 용법으로 쓰는 건 이해가 안가지만) 욕망이 생존, 노동권과 같은 당위보다 먼저 나온 것은 이에 대한 욕망이 "현장"에 많기 때문이고, 그것이 정치적 동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아실현에 대한 바람으로 실업안전장치를 사회에 도입시킬 수 있다면 좋은 일 아닌가? 왜 이것이 낭만적이고, 나이브한 고민이라고 이상하게 폄하되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사족 - 개인적으로 기본소득을 지지하게 된 요인을 모처럼 생각해보게 된다. 나는 전교조 교사인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그래서 사회적 약자를 위해 행동해야 할 시민의 의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내면화했다.(보수적인 가정에서 자란 친구가 북한을 미워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학부생 시절 죄책감 반 책임감 반으로 이런 저런 투쟁현장에 뜨내기처럼 참여했지만 연대에 충분은 없었고, 공권력의 폭력 앞에 무력감을 느꼈고, 당사자들에게 죄송스러울 뿐이었다. 내가 그들을 위해, 그들을 대변하는 무엇이 되는 것도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자의식과잉이라 그런 게 맞지만 아무튼간 '내가 그가 아닌데, 어떻게 당신의 고통을 이해해?'가 중요한 윤리적 질문이었다. 기본소득은 이 문제를 간단하게 해결했다. 나는 나의 처지에서 기본소득을 지지할 수 있고, 그는 그의 처지에서 기본소득을 지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기초생활수급자 분들과 대화했을 때 나는 내가 나를 위해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힘이 기초생활수급자의 노동할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는 걸 알았고 더불어 그들에게도 자기 자신만이 아는, 생존 이상의 다양한 욕구가 있다는 것에 공감할 수 있었다. 청년, 노인, 실업자, 노동자, 장애인, 비장애인, 여성, 부모, 자녀 etc 각자가 최선의 삶을 지향하며 기본소득에 합의할 수 있다. 뭐가 문제인가?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현장에서 "낮은 곳에 임한 나" 뽕에 취한 사람들도 너무 많이 봤다. 나 자신도 그렇게 될까봐 두려웠고 이 편이 내게는 훨씬 윤리적인 선택이었다.)



3. 복지국가는 "투박하고 재미없"으면 기본소득은 세련되고 재미있나?

<<정의당은 천호선 전 대표 시절에 '복지국가 선도정당', '비정규직 정당'이라는 당의 노선을 정립한 바 있다. 좀 투박하고 별로 세련되지도 또 급진적이거나 상상력을 자극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나는 한국에서 진보정당의 노선은 여전히 저 두 슬로건을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소 투박하고 재미없어도 된다. 우리가 대변해야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매일매일 그렇게 지루하고 투박하고 재미없게 살아가고 있다.>>

복지국가는 "투박하고 재미없"으면 기본소득은 세련되고 재미있나? 뭐 그렇다면 좋은 일이지만. 기본소득 활동 4년 하면서 진영을 가리지 않고 꾸준히 받는 멸시가 바로 이것이다. 뭐랄까. 팬시해보인다는? 심지어 기본소득 지지자들 안에서도 이런 종류의 멸시를 받는다. 주로 "힙스터"라는 비아냥을 자주 들었는데, 뭐... 정말로 딱히 할 말이 없다. 힙스터가 아니기도 하고... 힙스터가 욕도 아니고... 안 투박하고 안 재미없다는 데도 딱히 할 말이 없다... 대문자 진정성...안 아쉬워... 안 사요...

다만 내가 기본소득 강의 할 때 마다 꼭 하는 말은 "기본소득은 쉽다"는 것이다. "기본소득은 한 마디로 모두에게 조건없이 매달 돈을 준다는 단순한 아이디어이고, 사실 이것만 알면 다 아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지금 바로 이 논의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라는 말. 모 선생님의 표현을 빌자면 이것은 전염성이 높은 아이디어이고, 그래서 국가개조, 정책설계 어쩌고보다 재미있을 수 있다. 그리고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는 이 재미에서부터 말 걸기를 시도해왔다. 효과적인 캠페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온 오프 상시 진행해 온 "내가 기본소득을 받는다면" 캠페인이 있다. 청소년은 저축을 하고, 엄마는 이혼하고, 알바노동자는 롯데리아를 그만둔다고 했는데, 사실 이런 것들은 가정해보기 전까지는 스스로도 잘 인지 못하는 욕망 아닌지. (특히 2번째) 재미있다.

하지만 좌파, 생태, 급진 언저리에서 재미를 고려하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기만 한 일은 아니다. 우리는 얼마 전 열린 국제대회에 독일 마인 그룬트아인코멘 프로젝트 담당자 아미라 예히아(http://h21.hani.co.kr/ar…/special/special_general/42038.html)를 초청하는 데도 그것이 재밌는 이벤트에 불과하지 않느냐는 이유로 수 차례 반대에 부딪혔다. 우리의 입장은 사실 재미있다기보단 진지하고 간단했는데, 기술을 적극 사용하는 방법론이 참조할만하고, 국가 차원, 지역 차원의 기본소득 실험이 중요한만큼 개인들을 대상으로 한 기본소득 실험도 똑같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아미라는 기대대로 다양한 사례를 이야기해주었고 한겨레에서 기사로 발행되어 많은 공감을 얻었다.



4. 그 외 이상한 인과관계를 전제하는 표현들에 대해.
- 사는 게 쉽고 생각이 없어서 "재미있고" 낙관적인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최악에 있다고 차악을 지지해야 할 필요가 없다.
- 단순한 게 꼭 오류가 많다고 할 수 없고, 지름길이 틀린 길이라고 할 수 없다. 점진적인 로드맵이 더 실현가능성 높은 경우가 많지만 이 경우에는 그냥 잘못된 시각화인 것 같다.
- 마지막으로 "투박함"과 "재미없음"은 당위와 아무 상관이 없고 그저 글쓴이의 미감이 좀 별로라는 것만 누설한다고 생각한다. 이 문장은 약간은 인신공격이지만... 취향 따위 뭐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실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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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좀 처럼 할 기회가 없던 내용을 담아 기본소득에 대해 긴 글을 썼다. 그리고 진보진영 내의 이러한 반대가 기본소득을 실현가능하도록 벼르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감사합니다. 일찍 자야하는데. 망원동 동경 커피 카페인 효과 최상급...

2016년 5월 20일 금요일

2016년 5월 17일 강남역

생각이 너무 쏟아져서 그냥 쓴다.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이 일어난 날 나는 감정적으로 힘들지는 않았지만(슬픔에 일상이 마비되지는 않았다는 뜻), 이상한 기분을 느끼는 순간들이 있었다.

기분1) 날씨도 좋고 거리에 귀여운 스커트를 입고 나온 젊은 여성들이 많았는데 그들을 보며 느낀 전에 없는 감정. 위태로워 보이는 대상에 대한 안타까움. 안스러움 같은 것?
기분2) 나 스스로도 지하철 화장실에 들어가려다가 발걸음이 멈칫했다.

너무나 평범한 공간에서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한 사람이 예측할 수 없는 죽음을 맞았다. 우리 여성 모두가 공통의 위기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사건이다. 슬픔이나 공포, 분노, 문제제기 등 각자 다른 방식으로 표현되더라도 안전에 대한 위기감은 동일하게 느꼈을 것이다. 운이 나빴다면 내가 되었을 수도 있어. 우리는 이 생각을 해 보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여성혐오 문제를 해결하고 넘어가든가, 계속 두려움을 품고 행동의 제약 속에 살아가든가.
나는 우리의 동료 시민들이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할 줄 알았다. 살인은 사회를 유지하는 가장 기초적인 규범을 깬 문제니까. 아니 이런 설명이 필요하기나 한지.

그런데 지금 이 사건의 쟁점이 '여성혐오범죄냐 정신질환으로 인한 범죄냐'로 흘러가고 있다고 한다. 피의자가 "여자들이 날 무시해서 죽였다"고 제 입으로 말했음에도 굳이 한 발 물러선 곳에 문제를 재설정하기 위한 쟁점을 만드는 이유가 뭔가. 그에게 정신질환이 있었다고 한들 피해자의 성별이, 현장이 바뀌나? 여성혐오범죄가 아니라 정신질환으로 인한 특수한 사례라고 하면 우리는 여성에 대한 혐오와 폭력이 용인되는 문화와 제도, 정책을 바꾸기 위해 노력할 기회를 잃게된다.

또 어떤 사람들은 가난이 문제라고 말하는 것도 봤다. 가해자가 가난해서 사회로부터 배제당해온 것이 사건의 원인이고 그도 구조의 피해자라는 것이다. 가난은 언제나 어디서나 문제이다. 예컨대 가난한 아이들이 학업성취도가 낮은 게 문제라고 할 때 근본적인 문제는 가난이므로 그럼 교육적인 노력은 손 떼고 있자고 제안할 것인가? 가해자를 구조의 피해자로 본들, 문제의 본질이 여성혐오라는 것은 전혀 변하지 않는다.

가난의 문제는 여성이 다치고 죽는 문제를 포괄할 수 없다.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면서 약자에 대한 혐오를 폭력행사로 실행하기 시작했다는 맥락이라면 가난을 위한 프로그램과 약자의 인권을 위한 프로그램은 같이 가는 게 논리적이지 않은지. 그 두 가지는 상충되지도 않으며 통합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이유도 없다.

(그 이전에 이 사회가 그렇게 총력을 다해서 가난을 해결하려고 노력해오기나 했나? 왜 이럴 때만 갑자기 가난이 호출되는데?)

이 사회의 다수 남성들이 여성이 처한 위기를 동료 시민에 대한 위기, 즉 공통의 문제로 인식하지 않고, 타자화하며 자신들이 잠재적 범죄군으로 지목되는 데 대해서만 히스테릭한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유감스럽다. 그들은 여성들이 자꾸만 편을 가르고 혐오를 조장한다고 하는데, 아니 위험에 처한 게 여성들로 한정되어있는데 대체 어찌하라는 말인지.

그리고 남성이든 여성이든 이 위기상황을 자신과 관련된 문제로 받아들이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우리는 그냥 우리가 된다. 수동적 공격성으로 배제하고 편을 가르는 쪽은 대체 누구인가? 그리고 이 수동적 공격은 결국 어떤 폭력을 용인하고, 누구를 죽게 만드는가? '심기가 불편해서' 우리가 되기를 거부한다면 당신은 가해자일 수 밖에 없다. 이건 그런 문제.
당연하지만 여성의 안전을 증진시키는 일이 보호의 명목으로 여성을 조심시키고 통제하는 방향을 향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날, 나와 친구는 슬픔과 두려움을 공유하면서도 거듭해서, 그래도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살아야 해. 이런 일로 인해서 내가 원하는 삶을 포기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이 바람은 별 것도 아니다. 그냥 내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잠재적 폭력'에 신경쓰지 않고 활동하며 사는 것. 더 구체적으로, 늦은 밤 집에 들어오면서 주변에 누가 보고 있지 않은지, 멀리서 다가오는 오토바이 소리가 나를 노리지는 않는지, 길가에 주차된 차 문이 갑자기 열리지는 않을지, 생각할 필요가 없는 그런 매일 밤. 매일매일의 생활. 기본적인 자유.

2016년 2월 4일 목요일

헛된 토론

우연한 기회로 서울문화재단의 후원을 받아 열린 1인 1가구 생존프로젝트 워크숍에 참석해 질문을 던지는 역할을 맡았다. 평소 1인 가구라는 주제에 대해 관심이 있어 온 터였다. 원래는 이 기회를 빌어 1인 가구에 대한 생각을 좀 정리해 한 편의 글로 발행하고 싶었는데, 기대보다 허무한 논의가 오간 자리가 되어서 후기나 써본다. (초청해 주신 분께는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행사는 연구자들이 우선 발제를 하고 추가 패널들의 사례를 듣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사실 1인 가구에 대한 실질적인 이야기는 많이 오고가지 않았다. 부모로서 가정을 꾸리고 살고있다는 발제자들은 1인 가구에 대해 반대입장을 분명히 하지는 않았지만 전반적으로 우려의 기색을 드러냈다. 첫 번째 발제자인 문학평론가는 일본에서 화제가 된 고독사 문제를 예로 들며 퍼트넘의 사회적 자본 개념을 빌어 커뮤니티가 사라져감으로서 민주주의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데 대한 문제의식으로 확장시키다가 아무튼 문화예술 프로젝트를 통해 느슨한 연대를 형성해야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음으로 정치학자는 자신을 폴리스가 아닌 오이코스(집)를 연구하는 사람으로 소개하며 혼자 살 수 있는 집은 없다고 운을 떼었다. 그에 따르면 과거에는 가정 내에서 생산적 활동이 일어났지만 근대 사회에서는 점점 가정의 일이 시장과 복지국가에 의해 외주화되고 그 만큼 가정은 외부에 종속된 소비집단이 되었다. 그는 '집'이 정치의 공간, 사회와 연대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며 사적인 것을 배제하는 기존의 엘리트주의 공론장을 비판했다. 이 '집'은 기존의 가족 이기주의로 뭉친 중산층 기득권 가족과는 다른 관계성을 가진 가족인데 그러한 대안의 실마리를 그는 가난한 사람들의 공동체, 가출팸이나 쪽방촌에서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기득권들은 나눌 수록 가진 것이 줄어들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나눌 수록 얻을 것이 많기 때문이다. 발제문에 첨부된 보론에는 시골의 대가족으로부터의 '탈출'에 성공해 도시에서 커리어를 쌓아왔으나,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게 되며 어머니들의 자매 공동체를 그리워하게 된 '엄마 딸'의 자기반성 서사가 실려있어 좀 뜨악했다. 성별분업과 여성의 경력단절,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현 상황에서, 우리네 어머니들이 가지고 있던 지금은 상실해버린 가정 내 자급의 기술과 육아 공동체를 회복해야한다는 주장은 너무나 허무한 것이며 가사노동을 여성의 책임으로 보는 관점을 재생산한다는 점에서 위험하기까지 하다. 

마지막 발제자인 철학자는 독신의 실존미학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했는데, 요약하기 어려운 글이라 생략한다. 아무튼 세 발제의 공통적인 결론은 "알리앙스"든 "약한 고리 사회"든 "해방의 가족"이든 어떤 방식으로든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1인 가구가 (특히 노인인구) 고립으로 사회문제화 되는 것은 사실이니 관계를 통한 안전망 이야기를 하는 것도 어색하지는 않지만, 한국에서 커뮤니티를 위해 이야기되어야 할 실용적인 덕목은 각자 자기만의 방을 가진 '남'과 남으로서 관계맺는 기술에 대한 것이지, '사와 공의 벽을 허물어뜨리고 너나 없이 나누자'의 방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름답지도, 실용적이지도, 옳지도 않은 주장이다.

나는 패널들에게 물을 것까지 포함하여 일곱 개의 질문을 준비했다. 그 중 한 질문은 이런 것이었다. : 자원이 부족한 곳에서는 갈등이 일어나고 이를 협력과 타협으로 풀어나가기 보다는 분열이 일어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갈등을 끌어안은 채로 협력적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을까요?

나는 이 비슷한 질문을 이전에도 여러 번 해보았고 사회생활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무리없이 자신의 경험을 공유해주었다. 뾰족한 답은 없었지만 그래도 통찰을 주는 이야기들이었다. 이 자리에선 그래서 어떤 대답을 들었냐면 일단 희소가치의 개념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중학교 사회책에 나오는 그 희소가치 얘기를. 그리고 자원이 부족하면 경쟁이 일어난다는 편견은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라는 깨우침을 당했다. 인류학적 관점에서 보면 교환의 관계뿐 아니라 '증여'라는 게 있는데(몰랐지?), 서로 선물을 주고받는 경제활동이라고 한다. 실제로 인디언들이 선물을 주고받는 일은 자신을 드높이는 일이었다. 지금도 어디의 원주민들은 선물의 경제 속에서 살고 있다.  이 대답을 들었을 때는 세 시간 여의 워크숍이 끝나갈 무렵이었는데 대꾸할 기운도 없었다. 와...... 선생님들 대체 뭐가 문제세요? 인디언이세요??? 희소가치랑 증여에 대해서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상에 공짜가 있다니 너무너무 놀랍네요. 장담하건데 인류학자들은 증여 개념을 저렇게 아무렇게나 갖다 쓰는 걸 보면 매우 화를 낼 것이다. 시장경제랑 도시를 역기능의 측면에서만 바라보면서 '지식인'으로 먹고 사는 자신의 삶에 대해서는 어떤 모순도 없는 지 궁금했다. 그리고 모든 문제의 시작과 끝인 사랑하는 민주주의는 어떻게 발명되었다구 생각하시는지... 

워낙 보편적인 문제이고 시간을 잡아먹고 싶지 않아서 사례를 들지 않았지만 저 질문을 적으며 내가 떠올린 것은 노인 주거복지 전문가 분의 경험담이었다. 가난한 사람들만 있는 영구임대지역이 신혼부부나 중산층 가정도 섞여있는 전세임대지역보다 노인복지사업을 하기에 힘들다고 했다. 전세임대지역에서 노인분들을 위해 공간을 사용한다고 하면 '좋은 일 하시네요' 하고 별 트러블 없이 넘어가는데, 영구임대지역에서는 왜 노인만 돌보느냐 나도 알바하며 애 키우기 힘들다부터 시작해서 온갖 불평들이 튀어나온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이야기다. 물론 이를 극복하는 사례들도 있다. 지역에 대한 애정과 사명감을 가진 뛰어난 활동가-코디네이터가 수 년에 걸쳐 공동자원을 형성하기도 하고, 놀랍게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기도 한다. 사실 모두에게 그냥 돈을 주자는 주장을 하고있는 나야말로 그 누구보다 사람들의 선의를 확인할 수 있는 사례를 너무나 보고 싶은 사람이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연대란 그렇게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관계에는 돈이 들고, 신뢰와 개방성이라는 사회적, 심리적 자원을 축적하고 학습할 기회도 결코 가난한 사람에게 더 가까이 있지 않다. 

다른 것보다도 2016년에 1인가구에 대해 논의하며 인디언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여유가 놀라웠다. 아직 살만 하신가보다는 생각 밖에 안들었는데, 그렇다고 공론장을 이렇게 허무하게 막 쓰시면 빚내서 토건사업 벌이는 것 못잖게 미래세대에게 짐을 지우는 일이 된답니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 할 말을 잃었잖아요.

2015년 3월 30일 월요일

서울아트시네마의 낙원상가에서의 마지막 상영

어제 서울아트시네마의 낙원상가에서의 마지막 상영이 있었다. 아람이 표를 예매해 준 덕분에 무사히 관람했다. 자끄 드미의 <로슈포르의 숙녀들 les desmoiselles de Rochefort>(1967)을 보았다. 2009년에 이 영화를 몇 번이나 놓친 게 약간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사실 지루하지 않을까 약간 걱정했는데 오프닝 시퀀스가 너무 근사한 데다가 영화를 인솔하는 미셸 르그랑의 음악이 유려하고 힘이 넘쳐서 그냥 영화의 장력 속으로 슉 끌려들어갔다.

아래는 메모.

- 자끄 드미의 영화를 볼 때는 아녜스 바르다가 이 사람의 어떤 점을 그렇게 아꼈는지 찾고 싶은 마음이 든다.

- 나만의 일반론 : 흐르는 물. 유연하고 풍성한 리듬을 가장 잘 구사하는 감독들은 프랑스에 있다. (장 르누아르는 자신의 영화가 강을 지향한다고 말한 바 있다.) 빛과 어둠의 드라마틱한 미장센은 이탈리아 감독들이 가장 뛰어나게 활용하고, 미국 감독들은 굉장한 정신적 장악력으로 세계를 영화적으로 치밀하게 구조화한 작품을 보여주곤 한다.

- 위의 얘기를 꺼낸 까닭은 로슈포르의 숙녀들이 리듬과 색의 영화였기 때문. 사실상 색들도 리듬의 일부였다. 그리하여 동선과 편집과 미장센과 음악적 요소들이 함께 심포니를. 내용은 시종일관 낭만, 운명, 사랑 타령이어서 프랑스인의 자기지시적 농담으로 보일 정도인데(옆자리 남자가 영화 내내 코로 웃어대서 조금 거슬렸다), 뛰어난 영화적 완성도는 치밀한 계산을 뒤로한 것이라 정말 감탄했다. 음악-연기-카메라의 동선-색감 모든 게 단 한 순간도 떨어지지 않고 연동되서 움직였기에 나왔을 결과인데. 와... 이 사람 정말 대단한 변태잖아.

- 성적인 코드를 전혀 잘라내지 않고도 저런 무드, 저런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프랑스 인의 변태력이란... 매끈하게 일그러진 일본 미소녀 그림보다도 기이하게 느껴진다. 이 장미향 마카롱에서 관능을 느껴보세요 하는 느낌. 그런데 그 어조가 의뭉스럽지도 않아서 조금 황당. 문화적 차이일까.

아무튼 경쾌하고 아름다운 영화를 많은 사람들과 즐겁게 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 서울아트시네마에 처음 갔던 건 12년 전 고1 때, 아트선재센터에서 아빠와 만나 마이클 파웰의 <분홍신 The Red Shoes>(1948)을 봤었다. 아빠는 아마도 그것이 현대의 여성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해서 내게 보여줬던 것 같다.

아래는 작년 초였나 서울아트시네마를 위한 관객지지글을 모을 때 썼다가 타이밍을 놓쳐 보내지 못했던 글이다. 다시 읽어보니 시네마테크가 마모되고 소멸되었어야 할 나의 개인적 취향을 지지하고 보호해 준 공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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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내게 서울의 좋은 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한강과 서울아트시네마를 말할 것이다.

나는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내 고향은 친근하지 않다. 가끔은 어쩌다 우리 집에서 이런 애가 나왔는지 모르겠다며 핀잔주는 부모같다는 생각도 든다. 나와  너무 안닮았기 때문인데, 특히 시간감각에 있어 그렇다. 도심에서 얼굴없는 사람들이 나를 너무 자주 밀치고 지나갈 때 이를 실감한다. 서울의 시간은 빠르구나. 나와는 영 박자가 맞지 않는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서울은 나의 집이다. (내 느림은 서울의 빠른 시스템에 기대어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그래도 괴로운 것은 괴롭다. 가끔 남의 시간이 내 시간을 수도 없이 할퀴고 지나간다. 꺼지고 싶어진다. 그럴 때, 서울아트시네마는 더 없는 위안이었다. 서울에서 가장 느린 엘리베이터를 타고 낙원상가 옥상에 올라, 밖의 빛을 무시하는 컴컴한 극장 속에 무릎을 당겨안고 앉아있으면 다른 모든 시간들은 잦아들고 낯선 시간만 스크린 위에 남아 일렁거렸다. 아름다운 얼굴을 보고, 바다를 보고, 터널을 빠져나가는 기차의 시선을 보고, 탭댄스를 보고, 배가 전쟁을 관통하는 걸 보고, 안 가본 대륙의 모르는 시대를 감지하고, 편집된 시선들이 어긋날 때 감정이 실패하며 쪼개지는 틈을 보고, 영어, 불어, 대만어, 일어, 이태리어, 중국어, 포르투갈어, 스페인어, 스칸디나비아어 따위를 들었다. 가끔은 잠들었다.

영화가 끝난 뒤 극장을 빠져나오면 불화하던 시간들이 다시 스타트라인에 가지런히 리셋되어 있었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본 영화들이 내 삶을 바꿔놓지는 않았지만, 삶을 지속하는 데에는 틀림없이 도움이 되었다. 각별한 이들이 각별한 시공간으로부터 불려온 빛과 소리들의 기운 덕분이었다고 믿는다. 어떤 작품들은 지금도 생생히 떠올릴 수 있고, 아마 영원히 그러할 것이다.

서울아트시네마가 빛을 꺼뜨리지 않도록, 서울시에 충분한 지원을 요청한다. 극장이 없으면 영화는 살 수 없다. 영화가 우리 곁에서 함께 호흡하며 살아나가기를 바란다.

백희원('관객들의 대화'운영팀)

p.s- 사적인 얘기는 이렇고, 시민으로서 지당한 말을 좀 더 보태야겠다. 한국에 시네마테크가 이토록 적다는 것은 지난 십 몇 여년 간 한국 영화계가 거둬 온 성취와 비교해보면 이상하고 민망한 일이다.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에 12년이나 된 자생적인 '민간' 비영리 시네마테크가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문화정책의 우선순위를 착각하는 정부와 달리 무엇이 중요한지 아는 시민들이 사는 도시임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서울아트시네마는 공적 지원을 받아 마땅하다. 박원순 시장이 약속을 지키기를 기대한다.

2015년 2월 19일 목요일

2014 정리

(이걸 구정에 업로드하는 것은 농담도 아니고 그냥 게을러서임. 내용은 2014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해당.)

2014년이 너무 싫어서 사실 2014년의 시간에 충분히 동기화되어 살지 않았다. 대학원이라는 공간에 들어가 있었던 것, 낮보다는 밤에 활동했고, 그 시간마저 학과 수업 관련 텍스트나 사적인 관계에 할애했던 것 역시 그런 생활 감각에 일조했을 것이다.

죽음들만이 방까지 전달되어 방점처럼 남았다. 세 모녀, 부산외대 신입생들, 장애인 송일국 씨, 세월호 승객들, 윤 일병, 판교의 관중들, 현대아파트 경비 분, 제 2 롯데타워 건설현장 노동자 분, 신해철 (무려) 등.

아무튼 한 해 동안 뭘 하기는 했는데, 미미하니까 평가는 유보하겠습니다... 2014년에는 우리가 말하기 위한 자리를 우리가 만들었는데, 2016년에는 남들이 불러주는 일도 일어나면 좋겠다. 2015년에 의의를 성취할 일이다.


입력

올해의 영화니 책이니 별로 언급할 것이 없다. 내가 보지 못한 것, 가지 못한 곳의 리스트가 더 중요한 해였다. 분더바 투쟁현장에도 거의 가 보지 못했고, 밀양으로부터는 어쩌다 우연히 귤이나 얻어받았다. 성소수자 운동이 재점화 된 해라고 봐도 무리가 아니었고, 때문에 한국에서도 인권 운동, '정체성'의 운동이 다시 가능할지 가늠해 볼 수 있는 해였는데 그 현장에도 없었다. APAP도 못 가봤군. 귀신, 간첩, 할머니는 정신 차려보니 끝나있었다. 언리미티드 에디션에가서는 돈을 거의 못 썼다.


  • 부모님과 함께 본 '다음 문장을 읽으시오' 전시에서는 얻은 바가 많았다. 특히 1층에 들어서는 순간의 배치. 시대의 흐름을 시각화 해 원경으로 배치하고, 산책자를 위한 1인칭들의 경로를 만들고, 청자와 독자를 위한 이입의 공간을 설치. '우리'를 멀리서도 가까이에서도 볼 수 있는 기회였다. 그건 '나'에게는 자주 일어나는 일이지만, '우리'에게는 낯선 일이었다. 나는 기획의 서론 본론 결론이 아니라 기획의 구조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여러가지 채널의 효과를 생각하게 되었다. 입체적인 심상이 남았는데 두고두고 사고에 도움이 될 것 같다.
  • 도움이 되는 책들을 학교 안팎에서 읽었지만 정리 할 만한 말이 바로 튀어나오지 않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스스로에게 더 명시적으로 익히지 않으면 사실 익히는 게 아닐지도. 그 외에 좋아했던 시인들의 시집이 우르르 출간되어서 오랜만에 몇 권의 시집을 읽었는데, 오랜만이어서 그런지 한 단어 단어들이 너무 자극적이라 아주 느리게 읽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아직도 다 못 읽었다. 김행숙, 이제니, 신해욱, 이영주. 다 읽고 모국어랑 오래 떨어져 지낸 친구한테 고스란히 선물할 생각. 시집은 워낙 남에게 잘 주어서 이제는 손님처럼 느껴진다.
  • 기억나는대로 극장에서 본 영화들을 적어보자면 :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논픽션 다이어리, 기디언 경감, 혹성탈출, 카트, 액트 오브 킬링, 곤 걸. 다 재미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에 대해서는 글을 썼고, 하나에 대해서는 글을 쓰려다 실패했다. 
  • 그리고 유튜브를 자주 봤다. 유명한 쇼와 아이돌들, 대부분의 걸그룹, 코난 오브라이언 번역 클립 같은 것들.
  • 웹툰도 많이 봤다. 레진 코믹스에서 하양지 작가의 달콤한 애드립과 우리는 시간문제, 이자혜 작가의 미지의 세계를 손꼽아 기다려가며 읽었다. 내 취향의 두 정점이었다. (아마도) 같은 또래의 작가들이 제시하는 세계라는 건 각별하다. 
  • 음악은 그냥 매년 듣던 거 또 들었다. 나에게 음악은 이제 그냥 분위기인 것 같다. 어느 시기의 취향이 박제되었다. 이렇게 빨리 이렇게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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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 영화 상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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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 영화 상영회 @ 동네형들
청년, 기본소득, 복지국가 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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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여
밀양과 나 집담회
복지국가 vs 기본소득 대토론회
우리 민주와 썸타기
청년 녹색당 여름 워크샵 휴먼 라이브러리
청년, 기본소득, 복지국가 토론회
녹색당 기본소득 특별 위원회
  • 발행
복지국가 vs 기본소득 대토론회 토론문
청년, 기본소득, 복지국가 토론회 토론문
영화잡지 아노 3호 : 20세기 팝업북, 21세기 서사의 배치, 그랜드 부다페스트호텔 리뷰
나불나불 골병 : 불우한 이야기: 어린이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보관할 것
시대정신 기본소득 칼럼 : 답답한 시대, 기본소득으로 시야확보


2014 반성
  • 좋은 내용의 결정을 내리는 것보다 결정을 내려야 할 타이밍에 결정을 내리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 게다가 망설임은 결정의 질에 별로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 실패할 거면 빨리 해보는 게 좋다.

2015 목표
  • 매일의 시간을 들여서 의미있는 논문을 쓴다. 
  • 이틀의 간격으로 운동하고 건강을 지킨다.
  • 매주의 모임을 통해 유효한 운동을 한다.
  1. 제 2회 00 그라운드의 정확한 위치설정으로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2. 미래세대의 입장에서 기본소득의 핵심 가치를 개발하고 방향 설정을 명확히 하여 구체를 제시하고 담론의 물꼬를 튼다. 
  3. 새로운 관객의 대화 포맷을 시도한다.

2015년은 총선을 한 해 앞둔 해. 한국에서 열릴 기본소득 국제대회를 한 해 앞둔 해. 논문을 써야하는 해.

도전적인 과제 몇 가지로 목표를 집중해야 넘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작년에도 학교 공부를 허덕이며 해냈는데, 올해에는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강도가 더 세질 예정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들이 학교 밖에서 내가 하고 있는 활동과, 적어도 내 머릿 속에서는 아주 연결이 잘된다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다른 관점으로 작용하는 두 상이한 주제를 어떻게 나의 입장에서 남들에게도 알아들을 수 있는 내용으로 잘 엮어볼 것인가. 이것은 즐거운 과제이다. 문제는 체력. 재미가 피곤에게 번번이 진다. 벌써?

아빠가 마지막으로 직장생활을 하는 해이기도 하다. 나의 운명 뿐 아니라 우리 남매의 운명을 고민해야 한다. 발달장애가 있는 남동생에 대한 고민을 더 미룰 시간이 없다. 일자리도 일자리지만, 동생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공동체를 찾는 일이 더 중요하다. 엄마는 평생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해왔고, 가능한 거의 모든 시도를 해봤지만 동생은 결국 지금 혼자 있다. 내가 공부하고 있는 곳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2014년 6월 1일 일요일

기타 등등

   내가 나를 혐오하고 부정하는 과정에서 상처받은 타인이 있을까?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길었던 불화의 시기가 끝나가고 곧 화해의 순간이 돌아오리란 기분이 든다.

   어제 발표하며 새삼 반성의 서사만큼 쉬운 성장 서사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반성까지만 공유해도 이미 반 쯤 문제를 극복한 것 처럼 보인다. 하지만 행동은 쉽게 변하지 않고, 반성 이후엔 기나긴 적응과 이행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고개는 이미 꺾였는데, 몸은 관성대로. 보는 사람이 민망할 듯한 어색한 움직임으로 삐걱삐걱 걷는다. 어쩐지 목적지로부터 오히려 멀어져가는 듯한 느낌에 몸이 바르게 적응할 때까지 그냥 멈추고 싶어진다. 완벽하게 다시 세팅된 포즈로 걷고 싶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허영심이라고 생각한다. 계속 나아가야만 한다. 휴식과 성찰은 꼭 필요한 것이지만 그것을 발판삼아 도약하는 일은 좀처럼 없다. 

   좋은 사람이고 싶은 마음. 적어도 부끄럽지는 않은 글을 쓰고 싶은 마음.회복이 필요하다. 그런 마음이 향했던 시선을 복원해야 한다. 딱 5초만 눈을 감고 있으면 금새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구두 뒷굽을 딱딱 부딪히면. 보네거트를 다시 읽으면. 로메르를 한 두 편 보면.

   대화는 좀처럼 쉬워지지 않는다. 1)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할 것. 2) 상대의 자리를 남겨둘 것. 그 외의 주의사항들이 더 있을터인데, 잘 모르겠다. 요즘은 어떤 대화 자리에 갈 때 머리 속에 미리 지도를 그리는 게 습관이 되었고, 언제나 그 이상을, 예외를 기대하며 반만 내뱉고 있으면, 파울. 공이 뚝 고꾸라진다. 그리고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오직 나의 포즈 뿐이다.

   오늘 하나의 오빠가 떠나셨다. 나랑 관계있는 일도 아닌데, 한 달 정도는 떠올리면 웃음이 나올 듯. 남사스럽게 남의 일에 이입하구 난리야 ㅋㅋ 으크.

2014년 5월 23일 금요일

청년

   결핍은 많은 걸 설명한다. 하지만 설명만 할 뿐이다. 이에 결핍을 탐색하는 일을 멈추고, 내가 가진 것들을 순순히 인정하며 그것의 쓸모를 탐구하기 시작한 뒤 부터 불행이 떠나지 않는다. 이 불행을 끝내고 다시 우울로 회귀하고 싶은 충동이 갈 수록 더 자주 찾아오고 더 오래 지속되고 있다. 물론 그렇게 비겁하게 살 수는 없는 일이다.

옳은 정신과 아름다운 영혼을 갖춘 사람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야말로 내가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가장 독특한 것이다. 내면이 존재하고 언어가 처음 움직일 때부터 나는 선량했다. 눈치는 없는 게 스스로의 사소한 악함에는 민감했다. 어린시절 내가 저지른 악행은 세 살 때 동네 마트에 가서 크런키 초콜렛을 집어온 것,(너무 작아서 카운터에서 보지 못했다고 한다. 엄마는 나를 데리고 가서 사과시키며 물건을 사고 파는 개념을 학습시켰다.) 다섯 살 때 유리병을 깨뜨리고는 말 못하는 동생의 실수로 돌린 것 정도가 다였다.(아홉 살 때 어버이날 편지에서 고백하고 용서 받았다.) 당연히 다른 어린이들의 야만을 이해할 수 없고 동참할 수 없었다. 나는 모든 거짓말에 속아넘어갔다. 한 번 술래가 되면 그날 마지막까지 술래였다. 


그 심성 그대로 자랐기 때문에, 스무 살 넘어서는 솔직함이 의도치 않게 처세로 자리 잡았다. 바닥을 다 드러내면 악의라고는 없는 민낯이 나타났기 때문에, 예상했던 경멸 대신 의외의 애정들이 돌아왔던 것이다. 내게는 과분하게 느껴졌던, 어느 정도는 그들 자신에 대한 위안이기도 했을 애정들. 그러나 자기로 수렴하는 태도의 윤리적 한계를 깨달으며 이 안온한 내면 전시의 시간은 끝났다. 동시에 타인의 내면을 고평가하는 기만도 그만두었다.

   그리고 옳은 정신과 아름다운 영혼은 꾸준한 내면 관리만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건강한 육체와 잘 가꿔진 표정을 목적으로 삼는 삶이 오히려 인간으로서의 당위에 더 걸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는 곧 단정한 아침을 설계하는 생활, 밤을 정리해야 하는 생활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바로 지금부터.


그 이후로는 매일 아침이 절망이다. 자기비하와 자기연민을 걷어내면 한결 나은 사람이 될 줄 알았는데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한 건 자기혐오다. 행동력을 높이기 위해 근거도 없는 부실한 자부심을 성급히 쌓아올린 게 잘못이었을까. 새로 찾아낸 기준이 모든 어제를 실패로 판단하자, 삶은 호소할 수 조차 없는 하찮은 수치로 얼룩지고 모든 내일은 공포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달리 무슨 도리가 있단 말인가. 겸손을 빙자해 스스로를 저평가하며 다독거릴 시간, 뻗어있을 여유 따위는 없다. 

이런 순간 가장 나쁜 선택은 자기혐오를 잊기 위해 타인에 대한 경멸을 시작하는 것이다. 입밖으로 내지 않은 최근의 몇몇 경멸과 혐오는 이런 종류의 것이었다.

일단 오늘은 다시 제 바닥을 들통내며 스스로를 까내리는 차악을 택해본다. 나는 20 세기의 부작용으로 발생한 비대한 자의식의 숙주에 불과하다. 핵폐기물에 피폭당한 영혼이 할 줄 아는 건 소비와 성찰 뿐이다. 별자리점과 심리테스트, 자기계발서들은 말한다. 생각을 멈추고 행동하세요. 아니 나는 아마 그렇게 하지 못할 거에요. 영원히 못할 거에요. 더 나은 실패조차 아닌, 같은 실패만을 지긋지긋하게 반복할 거에요. 잠든 새 솜이불에 질식당해 죽어버렸으면...... 죽음조차 이토록 부드럽게 상상하는 나는 하루라도 빨리 모든 걸 포기하고 의탁할 곳을 찾아야 하는 지도 모른다. 아주 조금이라도 더 선량할 때. 조금이라도 더 사랑받을만한 여지가 있을 때.

   아니야. 인간이 못된다고 벌레가 될 순 없다. 나는 아직 젊고, 머리도 쓸만하다. 부모는 나를 지지하고, 친구들은 나를 이해한다. 예쁜 남자친구는 내가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빙긋 웃으면 애정의 눈빛을 돌려 준다. 나는 지지부진함을 견뎌내며 삶을 조금 더 낫게 만들고, 사회에 개입할 수 있다.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나를 구원할 것이다. 내일은 정말 그럴 것이다. 바다 한 가운데에서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리는 결말 같은 것. 그런 건 꿈도 꾸지마 ㅎㅎ 오늘도 스스로에 대해서만 이렇게 오래도록 생각했으니까 ㅎㅎ 고다르의 부고를 들으면 눈물이 날까? 이런 건 언제나 닥쳐야 알 일이지만 지금으로선 안 날 것 같다. 그런데 눈물 따위 정말 알 게 뭐람.

2014년 3월 5일 수요일

동정

엄마가 없는 사람들이 참 안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외할머니가 없는 우리 엄마까지 포함해서.

중학교 체육시간의 자유시간에 한창 수업 중인 창문 근처를 얼쩡이는데, 창가 쪽의 여자애가 턱을 괴고 지루한 표정으로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고등학교 이전의 나는 놀랄만큼 눈치없고 모든 거짓말에 다 속아 넘어가는 애였는데, 그 날 뭔가 업되어 있었는지 친구에게 "헐 쟤네(수업 중인 애들)가 우리(놀고있는) 부럽게 쳐다봐"라고 말했고, 청소시간에 일군의 여자애들에게 둘러쌓여 있었다.

알고보니 창가에 있던 여자애가 세탁소를 운영하는 가난한 집 아이었고, 내 말을 '가난한 자신이 나를 부럽게 쳐다본다'로 잘못 이해한 것이었다. 게다가 소위 '욕빨'로는 지지 않는다는 명성을 가진 여자애라, 나는 싸가지 없는 년이 되어 그 친구들에게까지 욕을 엄청 먹었다. 미친년아 씨발 니가 뭔데 우리 엄마 아빠 가난하다고 나한테 불쌍하다고 씨발 etc... 나는 그애 이름도, 누구인지도 몰랐기 때문에 오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해명의 말 같은 건 걔네한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애에겐 응징, 내게는 속죄라는 각각의 프로세스가 남아있었을 뿐, 둘 사이를 잇는 용서나 화해를 위한 공간은 애초에 없었다.

그러나 아직 '기만'을 다룰 줄 모르던 시절이라, 나는 꽤 오랫동안 의도적이든 아니든 타인의 가난을 비웃어 상처를 입혔다는 죄책감을 느껴야 했다. 그래서 그 뒤로도 한 번 더 뜬금없이 사과를 했다가 이상한 애 취급을 받았다. 이듬 해에 그애는 자퇴했다. 나른한 말투로 늘 투덜거리던 아줌마 사회 선생님이 버스에서 머리를 노랗게 염색한 그애를 만났던 일을 말해주었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도 없는데 다녀서 뭐하녜요. 뭘 모르는 소리에요. 여러분 졸업은 하는 게 나아요. 걔도 살아보면 알겠죠."

그애에게 엄마가 없었던 건 아닌데, 그냥 엄마가 없는 사람들이 안되었단 생각을 하니까 갑자기 연달아 생각이 났다. 야무지고 무식했던 여자애. 별로 행운을 빌지는 않는다.

2013년 12월 15일 일요일

안녕을 물으신다면,

   안녕들하시냐는 대자보가 큰 인기를 얻고있다는 말을 들었던 건 금요일 낮이었다. 그래, 그럴 만도 하지, 하고 넘어갔는데 하루 반나절이 지난 오늘에는 SNS에서 그 얘기를 입에 안 올리는 사람이 없다. 기사만 수 개가 떴고, 페이스북 담벼락에 제 나름의 자보들이 붙고있다. 그리고 이 파도타기를 보며 내가 가장 먼저 지은 표정은 환멸이었다. 환멸은 입장이 아니기에 입을 열지 않았으나, 감정의 층위에서 이 현상을 대충 파악하고 고개 젓고 넘어가서도 안될 것 같다. 판단하고, 입장을 만들어보자. 내게 드러난 환멸의 기저를 살피는 데서 시작해, 그것을 넘어서보기로 한다.

   이 대자보 행렬은 개인의 직접행동에서 촉발되었다. 환멸의 일차적 이유는 여기 있을 것이다. 개인의 직접행동에 대한 불신. 그것이 대중적 움직임으로 번지는 데 까지 성공하더라도 유효하게 지속되는 것을 목격한 사례가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발상과 액션은 보통 사회적 문제는 너무나 거대하고 내 자신이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며 그렇다고 침묵하고 있는 것은 양심이 허락치 않을 때 행해진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동인이 보통은 문제해결에의 욕망보다 양심의 가책에 있다는 게 내가 심적으로 불편해지는 또 하나의 이유겠다.

그럼에도 주현우 학생의 이 행동 자체는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사방이 어둡고 동료도 보이지 않을 땐(글쓴이가 청년학위라고 듣기는 했지만) 직접 촛불을 켜야 한다. 사실 전문가가 아닌 이상 이 이상의 어떤 행동이 가능하겠는가. 그러나 이 액션에 이토록 많은 이들이 '갑자기' 나도 안녕하지 못하다고 화답하는 상황은 씁쓸하다. 희망보다는 다른 게 읽히는 탓이다. 

대자보라는 형식, 학생이라는 신분, 각자의 정치적 무관심을 질타하고, 동시에 그 무관심할 수 밖에 없었던 까닭을 청년 스스로의 입장에서 서술한 내용. 진정성의 삼위일체다. 평범한 한 학생이 자신을 침묵의 공범자로 위치시키며 양심고백 하고, 안부를 물어준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사실은 나도 안녕하지 못했다"고 입을 연다. 문제는 줄곧 있어왔고, 선정적인 비극을 내세운 거친 슬로건들도 그친 날들이 없었는데, 이제서야. 이토록 사려깊은 수사를 만났을 때에야 응답할 마음이 든다는 게...... 솔직히 이 얼마나 나약한 사람들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또한 이 진정성이 그들을 매혹시킨 핵심이라면, 얼마나 착각 속에 살고 싶어하는 소비자-시민들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진정성은 정치적인 것과 대비된다. 그리고 '진정성'을 판단의 근거로 삼는 사람들은 온전히 자신의 의지로 행동하고 싶어하고, 적어도 그렇다고 스스로 최면을 걸지 않고서는 행동할 생각이 없는 냉담한 대중들이다. 어떤 정치적 전략에도 동원되고 싶어하지 않고 자신의 양심과 감정에 충실하고 싶은 사람들 말이다. 내게는 이 안녕들하십니까에 대한 반향이 커지는 것이 깨어있는 시민의 대다수가 결국 이런 소비자들이라는 증거로 읽힌다. 그리고 그 '깨어있는'이 수식하는 대상은 양심 뿐인 것 같다. 양심만 깨어있고 머리는 깨어있지 않은 사회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고 만다.

   한편, 예기치 못한 대중적 행동이라는 점에서, 촛불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08년의 촛불은 축적된 분노가 거리로 터져나왔다는 느낌이었다. 사람들은 씩씩했고, 참 늦게까지도 걸었다. 4대강, FTA같은 의제들은 MB아웃이란 슬로건으로 수렴하며 일차원적인 분노표출로 변환 되었다. 누구도 그에 책임지며 대답하지 않은 채로 날이 추워지자 거리는 더 이상 달아오르지 않았고,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다.

이 대자보 행렬은 누적된 죄책감이 흘러나온다는 인상이다. 촛불 때의 분노가 그러했듯, 죄책감 역시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 해소될 수 있다. 죄책감을 견딜 수 없어서 침묵을 깨면,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는 데도 어쩔 수 없다고 느껴질 때 다시 입을 다물고 시선을 거두게 된다. 그냥 그렇게 된다. 예를 하나 들자면 특히 용산에 대해 많은 이들이 이와 같은 기승전결을 거쳤던 것 같다. 할 수 있는 걸 다 하는 동안 일말의 죄책감은 해소되고 뭔가 하기는 했다는 양심의 알리바이가 생성된다. 

지금의 대자보판 역시 1.에서 얘기한 것과 같은 소비자-시민들이 그간 쌓인 죄책감 해소의 장으로 사용하고 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노파심이 든다. 양심의 알리바이 공작소에 그치지 않을까 우려된다. 그 알리바이로써의 액션들이 유효한 결과를 불러온다면, 아무렴 좋은 일일테지만 정부와 자본은 대중의 목소리에 어떻게 일관하면 되는 지 너무 잘 알고 있다. 할 수 있는 건 다 했는 데도 아무 것도 바뀌지 않으면 무력감과 피로가 구석에 딱지처럼 굳어붙는다. 그 뒤로는 둘 중 하나다. 뻔뻔하게 같은 레토릭을 반복하며 알만한 실패를 반복하거나, 비겁하게 못 본척 하는 삶에 들어서거나.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무튼 걱정은 다 제쳐두고, 정말 중요한 것은 다음이다. 이 참담한 상황 속에 어떤 흐름이 생기고 위기감이 공유된다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다. 다만 자보든, SNS든, 문제를 인식하고, 제 자리에서 발화하고, 그리하여 여럿이 한 데 모였을 때, 다음 행선지가 집회 현장 순례가 되어버리고.....되어버릴 뿐이라면, 발발했던 의미들은 또 딱지가 되어 앉을 것이다. 현 상황의 희망적인 지점은 아무튼 처음으로 각자의 서사들이 모이고 있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나 자신을 위해 그들에게 연대한다는 게 기만없이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들이 슬로건으로 소비되지 않고, 타자와 접속된 상태로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가는 지속가능한 플랫폼의 구성으로 나아가면 좋겠다. 그리하여 복잡한 관계의 지도가 가시화되길. 그리고 말미에 자기 이름을 적었던 이들이 자의적으로 쓸데없이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살아나갔으면 좋겠다. 촛불은 불어 끄면 그만이지만, 온-오프라인으로 기록된 이름은 못지우니까.

덧- 내가 하고 있는 활동과 관련해서 설렘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대중적인 움직임이 특정 아젠다 운동에 결합해 그것을 성공으로 이끌어주는 것은 앞으로 수십 년은 불가능할 일처럼 여겨진다. 기실 그런 게 가능한 건 정말 독재반대 민주화 투쟁정도 아닐까. 

2013년 11월 27일 수요일

나의 선의

   나는 모든 일을 가능한 지체시키고 싶어하며, 가능한 작은 점으로 수렴해 웅크리고 싶어한다. 짧은 생 내내 그래왔다. 알고 있었지만, 과거지향적이며 만사를 내부로 수렴시키는 이 수동적 태도가 이 정도로 적극적인 욕망을 통해 발현되는 것인 줄은 몰랐다. 뭐냐면, 나는 아주 많은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꼼짝않고 싶어진다. 매 초 마다. 매일 매일.

꼼짝도 하고 싶지 않은 욕망이라고 하면 궤변같아 보일 것이다. 그러니까 여기다 쓰고 있다. 그러나 팽창하는 우주에는 블랙홀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 두자.

아무튼 새삼 이로 인해 괴로운 까닭은 요즘 하는 일이란 게 순 남들한테 연락해서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관계를 사방으로 늘리는 일을 하는데 순조롭게 진행될 때 조차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의도를 감추느라 허름한 레이어를 몇 겹 둘러싼 마음은 하루만 지나도 너덜너덜.

   그러다 생각한다. 나는 스스로의 선의를 좀 믿자. 타인에게 증명해보이려 할 것 까지는 없다해도, 나 자신은 나의 선의를 믿자고. 남들이 어떻게 꼬아서 올려 보든 내려 보든 간에 그냥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내 선의를 보아주자고. 정말이지 나는, 우리는 얼마나 선량한 마음으로 이 일에 임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런데도 어째서 떳떳한 표정을 짓고있지 못한 걸까. 언제나 비굴하게 쭈뼛대고야 마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늘은 서칭을 하다가 프랑스 기본소득 포털 사이트 운영자의 개인 블로그에 들어가게 되었다. '셀프 인터뷰'로 이루어진 자기 소개를 읽었다. 그는 24세의 청년으로 생각보다 젊었다. 그랑제꼴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엘리트. 지금은 공동경제, 공유경제를 키워드로 한 웹진의 치프 에디터이자, 유럽 기본소득 시민 발의안의 주요 조직가들 중 한 명이다. 요즘에는 배낭 메고 세계 각지에서 머물며 살고 있다고 한다. 자신의 목표는 다음 세대에게 더 나은 세계를 물려주는 것이며, 그래서 더 발전된 자유를 담보할 수 있는 머니-시스템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내가 어디에 가서 저는 다음 세대에게 더 나은 세계를 물려주고자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것은 진실이다. 나는 모두에게 더 나은 세계를 만들고 싶어서 이 일을 하고 있다. 정말 그렇다. 어째서 모른 척 해왔을까.

......아마 당위를 당당히 내세우기엔 이 사회가 이해 관계 당사자로써의 입장조차 세우는 게 일반화되어있지 않은 곳이라서 그렇겠지. 당위가 아니라 욕망 때문에 이 운동을 한다는 화법이 더 시급했던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위치를 알고나면 욕망이 곧 당위고, 당위가 곧 욕망이 된다. 아무튼 나는 이 몰락감 가득한 세상에서 나와 당신의 더 나은 삶을 위하는 방향으로 삶을 조정해나가고 있다.

일단 체력을 좀 키워야겠지만 말이다.

2013년 11월 16일 토요일

젊은 엄마들.

   가구 전시장에 이어 유아교육전에서 행사보조 알바를 했다. 젊은 엄마들, 예비엄마들로 붐볐다. 코치, 토라버치, 칸켄백의 거대한 웨이브 속에서 나는 몇 가지를 발견했다. 1) 미취업 기혼여성들의 미인 빈도수가 높다. 2) 모든 엄마들은 멋진 팔뚝을 갖고있다. 3) 그러나 엄마들의 미모 격차는 어린 미혼 여성들 간의 그것보다 훨씬 크다. 4) 요즘 아가들의 옷은 정말 예쁘다.

이 엄마들의 미모는 뼈대부터 다르다. 이마와 콧날이 반듯하고, 눈매가 선명하고, 피부는 맑다. 대개 화장기 없이 수수하며 앞머리 없이 어깨를 살짝 넘는 생머리. 옷은 기본 화이트 톤에 카키, 블루, 오렌지 정도로 어쨌거나 세련되고 편안한 배색. 질 좋은 린넨 같은 것으로 된 걸 입고 있었다. 또 하나 특징은 얼굴에 새겨진 표정이 없다는 것으로, 대개 멍하고 무심한 낯들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심하고 자연스럽게 제품에 대해 묻고 평가했다. 소비 전문가들.

한편, 분명 같은 나이대 같은데 나 어릴 적 아주머니들과 별 다를 바 없는 엄마들도 많았다. 부은 몸, 피로가 역력한 얼굴, 삐져나온 머리. 기혼 여성들의 빈부 차는 미혼 여성들 간의 그것과는 비교도 안되게 확연히 드러난다.

아.

2013년 8월 4일 일요일

서점에 갔다.

   서점에 갔다. 무척 오랜만이었다. 돈이 궁해지면 가장 먼저 그만두는게 도서 구입. 근데 본래 책을 오프라인에서 사는 편이고, 서점에 '구경'가면 어김없이 뭐라도 하나 집어 나오기 때문에 요즘 같은 때엔 아예 서점을 들르지 않게 된다. 오늘은 모처럼 종로라 맘 속 지름신을 굳게 단속시키고 들어갔다. 정말이지, 많은 새 책들 사이를 좀 걷고 싶었다.

뭔가를 사리란 기대를 아예 접고 들어가니 뭐라도 읽어야 겠다는 마음이 절실해졌다. 책 한 권 다 읽을 시간은 안되고, 찝찝함 없이 적당량 읽을만한게 무엇 있을까 하며 신간 소설 진열대를 둘러보다 천운영 소설집 <엄마도 그러하듯이>가 눈에 걸렸다. 벗 하나가 올해의 단편이라며 추천했었다.

담담한 묘사로 이루어진 소설이었다. 그러나 작가들만이 잊지 않을 법한 단어들이 곳곳에 별사탕처럼 박혀있었다. 세 장 만에 목이 따갑고 머리가 찡했다. 눈시울이 시큰댔다. 결국 터지려는 순간, 무심히 동선을 그리던 주인공이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그러자 내 눈물은 멋쩍게 잦아들었다. 마치 술자리에서 옆사람이 만취하면 내 정신이 돌아오듯이.

노모의 죽음을 맞은 장남의 심리를 좇는 이야기다. 주인공은 제 감정의 결을 돌볼 줄 모르는 묵묵하고 성실한 중년 남자여서 작가는 그의 내면을 서둘러 표현않고, 그가 구멍을 감지할 때까지 천천히 어머니를 떠나보내는 절차들을 묘사한다. 그게 너무 좋았다. 요새 유독 이야기들이 '과정'을 전개하는 장면에 홀린다. 시간이 채워지면서 마디가 생기는 것 말이다.

몇 번 더 콧잔등이 달아오르는 순간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는데, 작가의 기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절묘한 거리조절. 맑은 콧물만 훌쩍이며 감탄했다. 십점이네 십점.

   출간 소식 듣자마자부터 정말 갖고 싶은 책이 있었다. 황현산 선생의 <밤이 선생이다>. 원래 갖고 싶은 책이나 앨범은 가지기 전까지 들여다보지 않지만, 아무래도 그건 한참 나중 일이 될 것 같아서 일단, 집어들고 털퍽 앉았다. 그러고보니 반디 의자가 다 없어져있었지만, 원래 서점 독서는 바닥에 앉아서 하는게 제 맛이다.




짧은 글들은 평범한 형식을 지키고 있었다. 일상적인 소재로 시작해서, 주제를 꺼내고, 마지막엔 통찰로 마무리하는. 옛사람, 혹은 나이든 사람만이 이런 식의 글쓰기를 할 수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포리즘을 감당할 수 있고 통찰을 자랑않는 글. 해야할 말만을 단정하게 담은 글. 너무 술술 읽혀서 마음을 꾹꾹 눌러가며 읽었다.

   한편 앉은 자리에서 발치에 걸리는 책이 있었는데 천운영의 <그녀의 눈물사용법>이었다. 아 원래 눈물사용에 밝은 작가였군. 서점이나 도서관에 오면 이렇게 동선이 독서를 이끈다. 기꺼운 마음으로 책을 펼쳤으나 배가 너무 고파서 다 못읽고 일어났다. 새우버거를 허겁지겁 쑤셔넣고 근처의 국정원 집회에 있었던 아빠를 만나 같이 집에 왔다. 중년 넘어간 남자들은 다른 사람 발걸음에 보폭을 맞춰주지 않는다. 그건 그들이 늙어서가 아니라 옛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아마 젊을 때도 똑같았을 것이다.

지하철에서는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무슨 책 봤니?
황현산의 <밤이 선생이다>.
아니 네가 황현산 선생을 알아?
응 알지. 너무 좋던데. 다 못읽었어.
허 텔레파시가 통했나.

그러고 아빠는 배낭에서 <밤이 선생이다>를 꺼내주었다. 감격에 겨워 주는 거냐고 물었더니 오늘 다 읽고 집에 두고 가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럼 그렇지. 취직하면 아빠한테는 예쁜 캡모자를, 엄마한텐 <엄마도 그러하듯이>를 선물해야지. (동생녀석은 뭘 줘도 별로 안기뻐한다)

2013년 7월 2일 화요일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다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다. 일기 안 쓴지 아주 오래된 것 같았는데, 그렇지도 않구나. 한 달도 안되었으니. 키보드는 여전히 고장난 채 있다. 지금 굳이 넷북 켜서 쓴다.

어느 회사 면접에 떨어지곤 평소보다 좀 더 상심했다. 아마 상황이 절실한 탓. 거기서 내게 기대감을 많이 주기도 했고. 하기야 주변 얘기를 들어봐도 꼭 면접 분위기 좋은 데에선 떨어지고 아닌 데에 붙더라는 이야기는 많지만. 장기적인 전망을 갖고 일할 수 있을 것 같은 몇 안되는 곳 중 하나였기에 더 아쉬웠다. 별 수 없지 뭐.

그 동안 일일 알바를 전전했다. 정말 가뭄에 빗방울처럼 돈이 똑, 똑 떨어지며 순식간에 지면에 스며들고... 이 회사 저 회사 다녀보니 각각 분위기가 정말 천차만별이다. 조용하고 가라앉은 곳, 느슨하고 활달한 곳, 여자가 많은 곳, 남자가 많은 곳, 비상장 회사부터 대기업까지. 그나저나 당연하게도 회사는 대학사회의 연장이었다. 수동태로 사람 가리며 인간관계 맺어온지 어언 7년, 주변에 어느덧 재밌고 똑똑한 (그리고 조금 절망적인) 소수의 사람들만 남았는데. 그 재미없는 테레비 개그하던 대학교 애들 전부 다 회사에 있었다. 아 어쩔 수 없는 건가. 저 맞장구의 세계를 피할 수 없단 말인가... 옷만 정장으로 갈아입었다 뿐이지 새터 때 한 번 보고 뒤돌아 도망쳤었던 그 친구들이 저기 고스란히. 아아. 사춘기 소녀가 되어버릴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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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에서 BAR이라는 용어를 많이들 쓴다. 어느 주부 게시판에서 비롯된 용어인데... 각설하고, 뭔가 약간 터무니없는 낭만이랄까 환상같은 걸 투사한 대상을 말한다. 인도의 자유로운 영혼이라던가 북유럽의 조용하고 모던한 삶 같은. 본인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가 보통 타인에게 들통나는 종류의 것. 나는 내 BAR이 궁금해져서 찾아보려 했지만 도통 없었다. BAR이 웃음거리의 대상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하나도 없다니(모르겠다니), 이 역시 비루한 영혼 아닌가. 안그래도 요즘 내 인생행로가 이렇게 걍팍한 것은 방어적이고 안일한 조로증 때문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말이다.

그러다 오늘 문득 찾아냈다. 내 BAR은 구김살 없는 속물적인 소녀였다. 투명한 여자애들. 사랑받는 데 최적화 된 애들.(개츠비에서 데이지가 바라는 딸 아이 같은) 얼굴에 바로바로 욕망을 애교로 띄워내는 그 투명한 구조 때문에 나는 언제나 그들의 그림자는 더 깊으리라 생각해왔다. 주변의 우울한 스놉/룸펜들보다 훨씬 더. 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그네들과 별로 친한 편은 아니었는데 그래서 더 내 BAR로 남아있는지도 모른다. 걘 너무 철이 없다고, 남자를 너무 막 만난다고, 애가 좀 생각없어보인다고, 저번엔 자기 명품 가방을 대놓고 자랑하더라고 뒷다마 마당에 오르내릴 때도 어쩐지 영 흥이 나질 않았다. 그도 그런게, 그렇게 솔직하게 명품 자랑을 하면 조금도 거만해 보이지 않는 걸. 그렇게 자기방어의 레이어를 한 겹도 안두르고 있는 애를 까내리고 싶지는 않다고. 나처럼 겁많고 내면에선 열등감이랑 우월감 쩌는 애 보다 훨씬 멋지다고 생각했었다.

지금은 별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굳이 타인의 깊이를 상상해주는 일도 예의는 아니다.

2013년 6월 2일 일요일

연어와 피자와 다우니의 천국!

   연어와 피자와 다우니의 천국! 미제와 삼성의 아름다운 팀플레이! 말로만 들어왔던 코스트코에 갔었다. 차도 없고 차있는 친구도 없는 관계로 우리 둘은 든든히 백팩을 메고 버스를 탔다. 그 전에 원기충전을 위해 하루 지난 치킨과 동빙고의 로얄밀크티 빙수도 흡입했다. 밀탑도 좋고 차 박물관의 수북한 녹차빙수도 좋아하지만 역시 이것이 가장 훌륭하다. 동빙고가 있는 동부 이촌동 아파트 단지상가의 카페와 식당들을 보고 나는 괜히 분개했다. "아니 시발 집 1층에 동빙고가 있는 것도 모자라서 김뿌라가 있는 건 좀 너무하지 않냐" 웃기위한 분개였으므로 웃었다.

보광동에서 양재 코스트코로 가는 길. 버스는 신사-논현-강남역을 가로질렀다. 인도에 북적이는 검은 머리통들. 차도를 가득 매운 붉은 미등들. 서로를 반사시키는 유리 외벽의 고층 빌딩들. 복학 첫 해 써야했던 레포트를 떠올렸다. '현대 사회의 바로크적 특성'을 찾아 쓰는 과제였는데, 한국 시와 이 고층 빌딩 중 무엇을 주제로 할까 고민했었다. 요즘 대학 인문학 강의들이 으레 그렇듯, 교수님은 과제를 아주 쉽게 수정해주셨는데 다른 거 됐고 "프레시오지떼"(사치스럽고 경박한 화려함)과 "뷔를레스크"(낯설고 이상한 것. 혼란스럽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것. 변신)라는 두 가지 특성에 집중해서 쓰라고 했었다. 결국 '주체가 사라진 포스트 모던 시대'의 빈약한 예시를 찾아내면 그만인 과제였다. 그리고 밤에도 야근으로 불을 꺼뜨리지 않으며 서로를 무한히 반사하는 종로 일대의 대기업 건물들이 주는 심상 같은 게 있었다. 결국 주체가 변신하고 사라지는 미래파 시인들의 시집을 주제로해서 썼지만. (나이들어 이런 걸 쓰면 영혼이 파.괘.된.다)


입장에서 계산가지 3시간이 넘게 걸려버렸다. 중간에 푸드코드 피자와 핫도그를 먹긴했다. 그래도 역시 와 좀 너무 한 것 아닌가 싶었지만 박물관으로 치환해보니 뭐 또 그 정도 걸릴만도? 각종 공산품들을 파는 1층에선 소파에도 앉아보고 접이식 의자도 펴보고 코렐 접시도 들었다 놔봤다. 지하의 식품관엔 아름다운 연어들, 청순한 소고기들, 술... 치즈... 각종 소스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냉동식품들. 그러나 우리는 할인하는 다우니 4리터와 에프킬라 전기 훈증기, 좀 싼 와인 두 병(맥주를 끊기 위함이다), 프레고 토마토 소스 3.6 킬로그람, 쯔유 1.8리터, 발사믹 소스(식초를 졸인 것) 정도만 샀다. 예산도 예산이고 짐도 짐이라 무리하지 않았다. 젊은 부부들은 카트가 넘치도록 생수며, 우리아이 술안주 우리남편 영양간식 등을 채워넣고 있었다. 우리는 부러움의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이 때 만큼은 결혼하고 싶기도 하단 대화를 나누었다. 하지만 역시 매일 4인 가족의 식사를 준비하는 건 할 짓이 못된다. 곰국이나 한 달 내내 먹겠지란 결론으로.

   그리하여 지금, 여기. 나의 새로운 욕망. 그건 거대한 냉장고... 그리고 코스트코 회원증... 사촌 언니들의 욕망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거대한 냉장고가 갖고 싶다보면 안정된 일자리를 구하고, 차 있는 파트너와 결혼하고,  ## 뉴타운에 입주하고 싶어지는 게 당연하다. 근데 나는 그 부분을 스킵하기 때문에 저 욕망이 완전 뜬 구름이 되어버린다. 5년 내로 1억 모으기 같은 것 보다 거대한 냉장고가 훨씬 추상적인 욕망의 대상인 것이다. 아무래도 타고난 그릇이 작은 것 같다. 그런데 일단 매일 커피 한 잔이라는 것도 실은 거대한 냉장고와 그리 먼 곳에 있는 욕망이 아니라서 이미 가랑이 찢어질 것 같이 힘든 뱁새입니다. 무제한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가 얼마나 고마운 포장지인지 아시나요?



아무튼 다음에 코스트코에 갈 땐 차없는 친구들 여럿이 모여 가서 사이좋게 대용량 상품들을 나눠야겠다. 기대된다. 문구류도 사고 싶다.


2013년 5월 31일 금요일

작년에 새롭게 얻은 것으로 두통이 있다

작년에 새롭게 얻은 것으로 두통이 있다. 스트레스가 곧장 물리적 통증으로 나타나는 것이 여전히 신기한 감각이다. 어릴 때 부터 신경성 소화불량이 있어왔기는 했지만 복통과 두통은 확실히 다른 느낌. 두통은 언어화된 감정들의 직접공격 같다. 그 순간 머리 속에 차오른 울화의 언어들이 엉키고 마찰하며 연소해버리는 것 같달까. 그 과정에서 열이 나면서 머리 양 끝 지점이 지끈지끈. 한편 복통은 좀 모호하고 뭉근한 통증이다. 어디 가야하거나 새로운 환경에 던져지면 배가 아팠는데, 좀 끼워맞추기 같지만 정체불명의 불안이 원인이기 때문에 두통과는 달리 모호한 통증으로 나타났던 것은 아닐까.


잠들었다 일어나서 이어쓴다. 어제는 두통으로 괴롭더니 오늘은 복통이 양반은 못된다는 듯 찾아왔다. 소화가 통 안되었다. 밀가루를 먹어서 그럴까. 곧 치통도 찾아올 것 같아서 두렵다.

요즘은 여유없음이 곧 희망없음으로 느껴지고, 엉망이다. 삶에 몰입이 되지 않는다. 몰입이 두렵다. 시간가는 줄 모르는게 두렵다. 사실 그래서 컴퓨터로 영화를 잘 못본다. 다 보고나면 러닝타임이 틀림없이 지나가 있을 거라는 게 두려워서. 30분 이상의 시간이 드는 일은 통제할 자신이 없다. 시작도 못하겠다. 그렇게 한 달 간 시계에서 눈을 못 땐 체로 아무것도 안하고 있었다. 문제가 있다. 

너무나 한심하다.

새벽에 잠들기 전, 프랑스에 있는 친구와 카톡으로 수다를 떨었다. 많은 사람들이 내게 상냥하고 관대하다. 미안한 마음보다 기쁨과 안도감이 앞섰다. 

한심하기 싫다. 

이를테면 나나난 키리코 만화 여주인공처럼 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미나미 큐타나 에릭 로메르의 여자들이 좋다. 

급화제전환. 에릭 로메르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홍상수도 좋아하겠네 하고 아는 체들을 한다. (당연하다) <생활의 발견>, <극장전>, <옥희의 영화>, <북촌방향> 밖에 안봤는데 맘이 환하게 좋은 작품은 딱히 없었다. 만듦새의 기이한 훌륭함도 스스로 설명이 안되어 약간 껄끄러움이 남아있다. (이건 좋은 거다.) <하하하>가 제일 재미있다고 해서 언젠가 보게 될 날을 기대중이다. 로메르와 홍상수는 비슷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다른 점이 더 부각된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더 길게 얘기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일단 지금 할 수 있는 메모는 이런 인상비평: 로메르의 인물들은 귀엽지만 그가 사람들을 귀여워하지는 않는 것 같다. 홍상수는 사람들을 귀여워하고 그의 인물들은 찌질하다. 로메르의 영화는 문학적이다. 물론 문학으로 치환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영화의 속성을 활용해서 문학적 심상을 남긴다는 것. '영화는 새로운 문학이다' 같은 표현도 무리없이 허락될 것 같다. 홍상수의 영화는 모든 요소가 영화라는 장르로써만 설명된다는 맥락에서 유독 영화적이다.

2013년 5월 28일 화요일

월세를 송금했다

월세를 송금했다. 이사온지 만 한 달이다. 오전에는 주문한지 10일만에 드디어 의자가 왔다. 방정리에 일단 종지부를 찍은 느낌. 조립식 데스크 2만 7천원. 접이식 의자 1만 2천원. 하필 이사와 동시에 직장을 그만두게 된 덕분에 돈 없어서 죽을 것 같았는데 말도 안되게 싼 공산품들 덕분에 살았다. 다이소, 이케아, 소프시스, 중국, 인터넷 쇼핑 만세. 왕자행거 2만원 대, 책장 6만원 대, 40와트 전구 스탠드 2만 2천원? , 2.0채널 스피커 1만 5천원. 다 정말 예상보다 싼 값. 이불솜, 커튼, 서랍이 아쉽지만 당장 급한 건 아니고 내 기분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도 아니니까 괜찮다.

오후에는 작년에 모 언론사에 보냈던 자기소개서를 다시 읽어보았다. 나의 빈약한 구직활동. 제법 번듯한 문화/진보언론 세 군데 정도에 지원한 게 전부였는데(토익 점수가 없어서 달리 쓸 곳도 없었다) 하나는 필기에서 똑 떨어지고, 두 개는 면접을 개운하게 망쳤다. 


#1. 면접 중인 회의실

면접관: 본인의 장점은 뭐가 있죠?
나: 제 장점이요? (정지)
면접관: (약간 당황한듯) 음 주변 사람들이 말해주는 장점이라도?
나: 아 어. 귀엽다고들 하는데...요...

몇은 어이없다는 듯, 몇은 귀엽다는 듯 웃는다. 

거의 무례했구나. 자소서는 지금 보기에도 적당히 잘썼다. 명료하고, 짧고, 촌스럽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너무 끼부리지는 않았고, 레토릭은 전형에서 벗어나있지만 가족관계, 성장과정, 성격, 활동경력 등 아무튼 자소서에 포함되어야 할 요소들은 전부 들어가 있다. 아부도 제법, 허세도 제법이다. 물론 지금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번듯한 진보언론에 지원할 게 아니니까. 마지막 면접자리에서는 편집장으로부터 초장부터 "별로 기자가 될 생각이 없나봐요?"라는 질문을 받곤 당황해서 아 아닌데요라고 더듬거렸었다. 얼굴에 써있나 싶었다. 맞아요. 저 별로 기자 되고 싶지 않은데 고를 수 있는 번듯한 선택지가 이정도였어요. 같잖은 언론인 사명감 같은 걸로 무장한 멍청한 언시생들 너무 싫어서 언시판에 얼씬도 않았어요. 

음? 좆도 모르는 애송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데?

각잡고 무난한 자소서나 써야겠다. 저녁에 무일푼 아이쇼핑을 했더니 구직에의 의욕이 조금 높아졌다. 생활을 꾸려나가는 데에 이토록 게으르다니, 부끄러운 일이다. 그런데 부끄러운 기분이 들지 않는다. 염치가 많이 사라진 모양이다. 걱정이 된다. 나에게 염치는 그 역할과 비중으로 치자면 어제 일기에 썼던 언니의 '낭만'에 견줄만한 것이다. 이전에 나는 염치에 기대어 많은 것을 안했고, 어떤 것들을 해냈었는데 이젠 그냥 일차원적인 두려움만 남아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 염치를 되찾으려 하기 보다는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용기를 끌어내야 한다. 아니 다 개소리인 듯. 닥치고 니 엿같은 자소서나 쓰란 말이야.

정말 그래야겠다. 일기는 3일 째 매일 쓰고 있네. 맥주를 마시면서 써도 된다는게 참 좋다. 의식의 흐름..... 좋아하니? ^^ 나는 좋아해. 쓰는 것만. 하하. 재활치료 성과있어서 조만간 의식의 흐름 말고 감각의 조립과 같은 리뷰도 쓸 수 있게 되기를. 최근에 극장에선 <위대한 개츠비>, <비포 미드나잇>을 보았고 컴퓨터로는 로메르의 <내 친구의 남자친구>를 보았다. 셋 다 할 말이 있다. 

2013년 5월 26일 일요일

재활치료를 받는 듯한 감각으로 일기를 쓴다.

재활치료를 받는 듯한 감각으로 일기를 쓴다. 일단은 목적없이 그냥 글쓰기. 글자들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블록쌓기하듯이. 영향력도 의미도 없다는 게 너무 마음 편하다. 하 세상에 어쩜 이렇게 연약한지? 그러고보면 SNS로 온갖 쓸데 없는 말은 다 하면서 매체에 나간 내 글들을 제대로 홍보한 적은 없다. 자격 없네.


이런 면에서 나보다 백배 자격있는 옛동료/친구가 '환멸'이란 단어의 뜻이 환상의 멸망이더라는 얘기를 페이스북에 올려놓았다. 그렇다면 환멸을 느껴본 적이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이겠지. 나는 보기와는 달리(?) 정도 없고 낭만도 없다. 귀여운 것,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고 한 때 조악한 미문 필터를 손가락에 끼우고 살았던 탓인지 '따뜻하고 투명하다'는 오해를 산 바 있으나, 주여 저는 맹세코 눈 먼 사랑도 보헴의 삶도 어른의 자유도 꿈꿔본 적이 없다는 거 잘 아시지요? 프랑스로 어학연수 갈 때도 눈에 별 안띄웠다. 그저 불안에 볼만 홀쭉해졌었지.

그 때 가장 친했던, 지금도 프랑스에서 미술학교에 다니고 있는 언니가 얼마 전 페북 메시지로 자기 텀블러 주소를 넌지시 알려주었다. 이 블로그에도 링크시켜둔 내 텀블러와 같은 스킨을 쓰고 있었는데, 카테고리가 여러 개 있어 의아했다. 아아- 클릭해보니 새로운 텀블러 페이지가 뜨는 게 아닌가. 주소도 아예 다른... 그런 하위 카테고리=외부 링크=다른 계정을 한 10개 만들어 놓은 걸 보니 너무 언니다워서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슥싹슥싹 몸을 써서 직관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것들은 능하고, 뭐든 '예쁘게' 만들어놓지 않으면 성에 안차지만 논리적이고 구조적인 사고 기능은 거의 꺼두었던 언니. 정색한채 커튼치고 고독의 시간을 가지면서, 푼수끼도 다분했던 언니. 주름이 잔뜩 생기게 활짝 웃는 미인이었던 언니를 모두가 좋아했었다. 

눈여겨 보게 되는건 아무래도 2008-2013년까지 매 해의 사진들을 올려둔 페이지였다. 그 중 나와 함께한 2008, 2009년의 사진들이 가장 많은데 나에 대한 언니의 사소한 기억들이 꽤 많이 적혀있어서 약간 감동해버렸다. (나는 여전히 사랑받고 관심받는 데에서 어린아이 같은 쾌감을 느끼는 모양이다.) 언니는 나를 '녀석'이라고 칭하고 있다. '녀석은 종종 이쁜 그림자를 발견하면...' 뭐 이런 식으로. 아유 간지러워. >< 언니는 2008년 겨울의 사진을 올리며 '내 낭만은 다 어디로 갔을까'하고 있었다. 저런. 언니에게 낭만이 없다는 건 너무 서글픈 일이다. 작가로써는 괴롭기까지 한 일일 것이다. 어쩐지. 지난 작업의 일부를 나누어 받았을 때 노스탤지어에 기대있는 것 같았는데.

그러나 언니가 낭만을 되찾기 보다는 새로운 차원의 추동력을 얻기를 바랄 따름이다. 낭만을 품고 따뜻하게 타오르는 자아와의 이별은 통과의례같은 어려움이기도 하니까. 4년이나 지났으니 이제 내가 모르는 언니가 있겠지. 

언니가 내게 '너처럼 진실된 영혼'을 만나서 기쁘다는 편지를 써주었던게 기억난다. 당시 그런 말들은 나를 외롭고 기쁘게 했었는데... 다 어여쁜 기억이다. 우리는 서로 사진을 참 많이 찍어주었었다. 아무래도 사춘기나 여고생시절과는 별개로, '소녀시절'을 공유한 사이인 것이다. 떠올려보면 배경이 꽃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