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26일 일요일

재활치료를 받는 듯한 감각으로 일기를 쓴다.

재활치료를 받는 듯한 감각으로 일기를 쓴다. 일단은 목적없이 그냥 글쓰기. 글자들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블록쌓기하듯이. 영향력도 의미도 없다는 게 너무 마음 편하다. 하 세상에 어쩜 이렇게 연약한지? 그러고보면 SNS로 온갖 쓸데 없는 말은 다 하면서 매체에 나간 내 글들을 제대로 홍보한 적은 없다. 자격 없네.


이런 면에서 나보다 백배 자격있는 옛동료/친구가 '환멸'이란 단어의 뜻이 환상의 멸망이더라는 얘기를 페이스북에 올려놓았다. 그렇다면 환멸을 느껴본 적이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이겠지. 나는 보기와는 달리(?) 정도 없고 낭만도 없다. 귀여운 것,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고 한 때 조악한 미문 필터를 손가락에 끼우고 살았던 탓인지 '따뜻하고 투명하다'는 오해를 산 바 있으나, 주여 저는 맹세코 눈 먼 사랑도 보헴의 삶도 어른의 자유도 꿈꿔본 적이 없다는 거 잘 아시지요? 프랑스로 어학연수 갈 때도 눈에 별 안띄웠다. 그저 불안에 볼만 홀쭉해졌었지.

그 때 가장 친했던, 지금도 프랑스에서 미술학교에 다니고 있는 언니가 얼마 전 페북 메시지로 자기 텀블러 주소를 넌지시 알려주었다. 이 블로그에도 링크시켜둔 내 텀블러와 같은 스킨을 쓰고 있었는데, 카테고리가 여러 개 있어 의아했다. 아아- 클릭해보니 새로운 텀블러 페이지가 뜨는 게 아닌가. 주소도 아예 다른... 그런 하위 카테고리=외부 링크=다른 계정을 한 10개 만들어 놓은 걸 보니 너무 언니다워서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슥싹슥싹 몸을 써서 직관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것들은 능하고, 뭐든 '예쁘게' 만들어놓지 않으면 성에 안차지만 논리적이고 구조적인 사고 기능은 거의 꺼두었던 언니. 정색한채 커튼치고 고독의 시간을 가지면서, 푼수끼도 다분했던 언니. 주름이 잔뜩 생기게 활짝 웃는 미인이었던 언니를 모두가 좋아했었다. 

눈여겨 보게 되는건 아무래도 2008-2013년까지 매 해의 사진들을 올려둔 페이지였다. 그 중 나와 함께한 2008, 2009년의 사진들이 가장 많은데 나에 대한 언니의 사소한 기억들이 꽤 많이 적혀있어서 약간 감동해버렸다. (나는 여전히 사랑받고 관심받는 데에서 어린아이 같은 쾌감을 느끼는 모양이다.) 언니는 나를 '녀석'이라고 칭하고 있다. '녀석은 종종 이쁜 그림자를 발견하면...' 뭐 이런 식으로. 아유 간지러워. >< 언니는 2008년 겨울의 사진을 올리며 '내 낭만은 다 어디로 갔을까'하고 있었다. 저런. 언니에게 낭만이 없다는 건 너무 서글픈 일이다. 작가로써는 괴롭기까지 한 일일 것이다. 어쩐지. 지난 작업의 일부를 나누어 받았을 때 노스탤지어에 기대있는 것 같았는데.

그러나 언니가 낭만을 되찾기 보다는 새로운 차원의 추동력을 얻기를 바랄 따름이다. 낭만을 품고 따뜻하게 타오르는 자아와의 이별은 통과의례같은 어려움이기도 하니까. 4년이나 지났으니 이제 내가 모르는 언니가 있겠지. 

언니가 내게 '너처럼 진실된 영혼'을 만나서 기쁘다는 편지를 써주었던게 기억난다. 당시 그런 말들은 나를 외롭고 기쁘게 했었는데... 다 어여쁜 기억이다. 우리는 서로 사진을 참 많이 찍어주었었다. 아무래도 사춘기나 여고생시절과는 별개로, '소녀시절'을 공유한 사이인 것이다. 떠올려보면 배경이 꽃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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