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는 작년에 모 언론사에 보냈던 자기소개서를 다시 읽어보았다. 나의 빈약한 구직활동. 제법 번듯한 문화/진보언론 세 군데 정도에 지원한 게 전부였는데(토익 점수가 없어서 달리 쓸 곳도 없었다) 하나는 필기에서 똑 떨어지고, 두 개는 면접을 개운하게 망쳤다.
#1. 면접 중인 회의실
면접관: 본인의 장점은 뭐가 있죠?나: 제 장점이요? (정지)면접관: (약간 당황한듯) 음 주변 사람들이 말해주는 장점이라도?나: 아 어. 귀엽다고들 하는데...요...몇은 어이없다는 듯, 몇은 귀엽다는 듯 웃는다.
거의 무례했구나. 자소서는 지금 보기에도 적당히 잘썼다. 명료하고, 짧고, 촌스럽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너무 끼부리지는 않았고, 레토릭은 전형에서 벗어나있지만 가족관계, 성장과정, 성격, 활동경력 등 아무튼 자소서에 포함되어야 할 요소들은 전부 들어가 있다. 아부도 제법, 허세도 제법이다. 물론 지금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번듯한 진보언론에 지원할 게 아니니까. 마지막 면접자리에서는 편집장으로부터 초장부터 "별로 기자가 될 생각이 없나봐요?"라는 질문을 받곤 당황해서 아 아닌데요라고 더듬거렸었다. 얼굴에 써있나 싶었다. 맞아요. 저 별로 기자 되고 싶지 않은데 고를 수 있는 번듯한 선택지가 이정도였어요. 같잖은 언론인 사명감 같은 걸로 무장한 멍청한 언시생들 너무 싫어서 언시판에 얼씬도 않았어요.
음? 좆도 모르는 애송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데?
각잡고 무난한 자소서나 써야겠다. 저녁에 무일푼 아이쇼핑을 했더니 구직에의 의욕이 조금 높아졌다. 생활을 꾸려나가는 데에 이토록 게으르다니, 부끄러운 일이다. 그런데 부끄러운 기분이 들지 않는다. 염치가 많이 사라진 모양이다. 걱정이 된다. 나에게 염치는 그 역할과 비중으로 치자면 어제 일기에 썼던 언니의 '낭만'에 견줄만한 것이다. 이전에 나는 염치에 기대어 많은 것을 안했고, 어떤 것들을 해냈었는데 이젠 그냥 일차원적인 두려움만 남아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 염치를 되찾으려 하기 보다는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용기를 끌어내야 한다. 아니 다 개소리인 듯. 닥치고 니 엿같은 자소서나 쓰란 말이야.
정말 그래야겠다. 일기는 3일 째 매일 쓰고 있네. 맥주를 마시면서 써도 된다는게 참 좋다. 의식의 흐름..... 좋아하니? ^^ 나는 좋아해. 쓰는 것만. 하하. 재활치료 성과있어서 조만간 의식의 흐름 말고 감각의 조립과 같은 리뷰도 쓸 수 있게 되기를. 최근에 극장에선 <위대한 개츠비>, <비포 미드나잇>을 보았고 컴퓨터로는 로메르의 <내 친구의 남자친구>를 보았다. 셋 다 할 말이 있다.
아십니까? 구글에서 "언론사 자소서 성장과정"이라는 맥아리없는 키워드를 검색하면 이 글이 세번째로 뜬다는 사실을? 우연히 들리게 된 구직자입니다. 저 역시 희원님과 비슷한 마음가짐으로 구직중인데 면접조차 불러주는 곳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으시면 좀 위로가 되실까요? 다른 글들도 재밌게 읽었습니다. 안녕히계세요.
답글삭제우와. 전혀 몰랐네요. 본의 아니게 낚시를. 우와... 그런 키워드를 검색하는 건 대개 언시생들이겠지요? 저 잠깐 방백을 좀... "욕해서 미안합니다. 구글 검색을 사용하는 님들 안 멍청해여. 제가 머저리임. 그리고 전 이제 언론사 안치니까 여러분의 적도 아니랍니다." 꺄륵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곧 좋은 결과 있으실 거에요. 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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