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16일 토요일

<미래세대의 기회와 도시의 청년복지> 심포지엄 토론문


올해 3월 시립대에서 열린 심포지엄에 토론자로 참가하여 발제한 글입니다.
조금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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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세대의 기회와 도시의 청년복지> 토론문

2016.3.11 백희원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1. 문제적 주체 : 88만원 세대, 에코세대, 삼포세대의 정치적 한계와 가능성

청년세대를 지시해 온 단어들은 오늘 날 청년들이 서 있는 사회적 위치를 잘 드러낸다. 신자유주의의 누적된 문제들을 감당해야 하는 청년들은 돈이 없지만(88만원 세대), 사회적 영향력의 측면에서 그들의 부모세대에 종속되어있으며(에코세대), 부모세대와 같은 ‘정상적 4인가족’의 생애주기를 포기해야 하지만 이를 대체할 다른 욕망의 가능성도 보이지 않는다.(삼포세대)

최근 JTBC에서 보도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고등학생의 장래희망 1위는 공무원(22.6%), 2위는 건물주와 임대업자(16.1%)였다. 명문대생들이 9급 공무원 시험에 응시한다는 얘기는 신기한 뉴스도 아니다. 청년기, 청소년기는 보통 가장 도전적인 시기로 일컬어진다. 그러나 오늘 날 이들이 가장 욕망하는 것은 안정성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물론 소득 불안정성, 낮은 취업률, 노동시장 이중화의 심화와 계층이동성 저하가 근본적인 원인이다. 높은 주거비용도 더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한 가지 맥락을 더하고 싶다. 청년 세대가 한국 역사상 물질적으로 가장 풍요로운 시대에 성장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당사자로서 증언컨대, 우리 세대의 성장기는 사회가 퇴보하는 역행의 시대이기도 했다. 우리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취 이후 태어나 IMF 이후의 사회에서 자립해야 하는 세대인 것이다.

민주화와 경제발전의 단 맛을 누릴 수 있을 것 같았던 시기는 짧았다. IMF의 개입으로 정규직 일자리 시스템이 깨지면서 가정의 붕괴도 함께 경험해야 했다. 삶의 회복은 쉽사리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사회는 새로운 규칙에 맞춰 빠르게 재조직화 된 결과 밀레니엄을 지나며 위기는 수습된 것처럼 보였다. 햇볕정책의 성과가 눈에 드러나면서 통일의 대업도 사반세기 내에 이루어질 것 같았다. 한일 월드컵이라는 대형 이벤트는 폭발적으로 사기를 드높이며 ‘광장’을 호출했다. 민주노동당은 원내에 진출했다. 정권 교체 후 광장은 촛불시위로 이어졌다. 그러나 2010년이 되었을 때, 천안함 사건과 전례 없는 연평도 포격이 있었다. 머리 크고 처음으로 당선을 지켜 본 대통령은 자살로 생을 마감했으며, 진보정당은 분열했고 통합진보당은 공중분해 되었다. 경제발전, 민주주의, 평화. 어떤 가치도 성공하는 걸 경험하지 못한 채, 또래들과 조직화 할 장의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 채 성인이 된 세대의 내면이 냉소주의와 보신주의에 빠지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분노하라’는 구호는 공허하다.

희망은 세계화의 흐름과 초고속 인터넷 인프라의 빠른 확장 덕분에 문화적 다양성을 누린 세대라는 것이다. 적어도 컨텐츠 소비의 측면에서는 선진국과 시간 차를 거의 느낄 수 없는 시대이다. 또한 한국의 청년세대는 역사적으로나 세계적으로나 가장 교육 수준이 높은 집단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지점에 대해 나는 회의적인데 아무튼 우리가 경험한 것은 목적보다는 수단으로서의 배움이었고, 시험에서 얕게 활용되고 말 뿐 실질적으로 축적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건은 청년 세대 일부가 이전 세대와 다른 욕망을 갖게 만들었다. 직장과 가정에만 충성하기 보다는 자아실현을 꿈꾸고, 동질한 사회구성원이 되기를 요구하는 집단주의에 거부감을 느끼는 주체들이 등장했다. 대기업에 취직한 경우에도 평생직장을 기대하지도, 원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삼포세대’라는 말이 적용되지 않을 수 있다. 가족이나 직장보다 자아실현의 권리에 집중하는 욕망이 정치적 동력이 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특히 여태까지 정치적 주체로 조명 받지 못한 도시 청년 여성은 자아실현의 욕망을 강하게 느낌에도 불구하고 가정과 직장에 잔존해 있는 구시대적인 위계에서 가장 억압받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지난 해 점화 된 페미니즘 열풍이 데이트 폭력, 몰카 외에도 여성의 일할 권리와 가사 및 육아분담을 적극적인 의제로 삼고 있는 점은 이러한 가능성을 분명히 보여준다. 높은 취업이민율과 ‘이민계’도 많은 청년들이 한국사회에선 실현될 수 없는 강한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애초부터 청년 문제는 청년만의 문제가 아니다. 소득불안정성에 사회적으로 학습된 회의주의가 결합되면서 청년들은 노동시장에서 안정적이고 보수적인 선택을 지향하고 있고 사회에서도 기성 세력에 대한 대항세력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역동성의 감소는 경제적으로는 불황으로,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의 퇴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금 이 시점의 청년 복지가 갖는 의미는 ‘불쌍한 청년’의 지원이라기보다 사회를 위한 투자이다. 즉, 청년을 위한 사회안전망이자 미래세대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장이다. 다시 공무원, 건물주 임대업자란 장래희망을 떠올려 보면, 안정성의 욕망 뒤에 숨어있는 자율성의 욕망을 짐작할 수 있다. 건물주 임대업자라고 대답한 청소년에게는 사실 소득이 확보된 이후 정말로 도전해보고 싶은 장래희망이 있을 것이다. 투자로서의 청년복지는 바로 이 진정한 장래희망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지금 이 사회적 약속을 해내지 못하면 현 청년 세대가 미래에 다음 청년 세대를 위해 기여하기는 더 어려울 것이다.


2. 지금 청년복지의 방향 : 청년배당, 청년수당, 청년희망통장

다행히 2015년은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었던 청년들을 위한 직접적인 소득 지원 정책이 지역에서부터 논의 된 의미 있는 해였다. 성남시 청년배당과 서울시 청년수당이 논의의 중심에 있었고 거의 주목받지 못했지만 경기도는 청년희망통장 정책을 발표했다. 각 정책들은 서로 다른 청년복지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성남시 청년배당은 일종의 부분 기본소득 형태를 취하고 있는 보편적 현금지급 정책이다. 올해 시범적으로 24세의 성남시민에게 지역화폐의 형태로 연 50만원이 지급되고 있으나 당초 계획한 대로 19세부터 24세까지로 대상을 확대하고 연 100만원을 지급할 예정이다. 서울시 청년수당은 미취업 상태의 “사회에서 배제된 청년들”(NEET)을 대상으로 지원자를 선별하여 3,000여 명에게 월 50만원 씩 연 최대 300만원을 지급하는 계획으로 아직 세부 내용 확정을 위한 연구 중에 있다. 청년수당 뿐 아니라 사회활동을 위한 지원도 함께 한다. 선별 기준에는 소득수준과 지원자의 활동계획 여부 등이 반영될 것이라고 한다. 지원자들은 매월 활동 보고서를 등록해야 한다. 경기도의 청년희망통장은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월 소득 130만원 이하의 청년이 3년 간 퇴사하지 않고 매월 10만원 씩 저축할 경우 지방정부와 시민사회가 매칭펀드 형태로 15만원 씩 더해서 3년 후 1,000만원의 목돈을 모을 수 있도록 돕는 정책으로 올해 500명을 선발할 예정이다.

이 중 미래세대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가장 효과적인 정책은 무엇일까? 기회는 기본적으로 시간, 학습과 장기적 관계 축적, 경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경험으로 구체화 할 수 있을 것이다. 성남시 청년배당의 경우 그 효과를 정확히 측정하기가 어렵다. 그 돈으로 교재를 살 지, 친구를 만날 지, 노동시간을 줄이고 다른 일을 할 지는 전적으로 청년 자신이 결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기회로 만들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통제권은 성남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청년에게 있다. 청년배당은 청년이 자신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반면 청년수당의 경우 서울시가 선별기준과 프로그램을 잘 설계하고 좋은 협력기관들을 발굴할 수 있는지가 관권이다. 노파심이 드는 지점은 복잡한 선별 및 지원체계를 수행하기 위한 행정역량, 활동기회의 질, 지급대상자의 “자기주도”를 해치지 않는 관계수립이다. 청년 문제를 위해 오래 노력해 온 서울시인 만큼 좋은 프로그램을 기대할 따름이다. 경기도의 경우 청년희망통장이 아니라 사장희망통장으로 이름을 바꾸는 게 낫지 않나 싶다. 이는 월 15만원으로 청년을 저소득 저임금 일자리에 묶어두고자 하는 악질적인 정책이다.

복지대상자와의 관계성의 측면에서 각 정책의 방향성을 요약하면 청년배당은 청년을 신뢰하는 정책, 청년수당은 청년을 보호하는 정책, 청년희망통장은 청년을 착취하는 정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각 정책들은 세대 간 통합을 시도하고 있는데 청년배당의 경우 지역화폐를 지급함으로서 지역 자영업자들과 상호의존적 이해관계를 형성시켰고, 청년수당의 경우 시니어 멘토 그룹과 연결하는 프로그램(대청마루)을 기획 중이다. 청년희망통장의 경우 중소기업 고용주들이 저임금을 유지할 수 있도록 청년노동자를 지원하고 있다. 이 중 가장 의미 있는 상생 모델은 청년들과 자영업자들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대등하고 긴밀하게 연결시킨 청년배당이라고 생각된다.


3. 앞으로의 방향

청년희망통장은 차치하자. 청년배당과 청년수당에 내재된 정부와 수급자 간의 관계성을 향후 국가차원에서 도입해야 할 복지 프로그램의 방법론으로 생각할 때 어떤 쪽을 지지해야 할까? 양 쪽 모두 긍정적 비전과 위험성을 갖고 있다. 나는 이상적인 사회통합의 상에 맞춰 사회구성원들을 보호하고, 사회적 수요를 공급하는 방향보다는 시민들의 역량을 신뢰하고 곧장 자원의 지원하는 방향이 21세기 한국 사회의 상황에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일단 행정부의 권력이 강한 한국에서 지원체계가 복잡해지면 아무리 선의에 근거한 복지정책이라도 지급대상자가 ‘을’의 위치에 놓이게 될 공산이 크다. 또한 청년배당과 같은 보편적 소득지원은 한국사회의 많은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인 소득불안정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함으로서 사회적으로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예컨대 가정과 기업에서 위계적이고 비생산적인 권위주의 문화가 계속 유지되는 것, 청년들이 시장에서 도전을 꺼리는 것, 사교육 경쟁이 심화되는 것은 불안정한 사회에서 안정적인 소득을 위해 개인들이 참고 견디는 리스크이다. 최소한의 조건 없는 소득안전망이 보장된다면 기층에서부터 개인들의 권리행사로 사회가 변화하는 것을 기대할 수 있다. 그리고 다시 청년의 입장으로 돌아오자면, 소득불안이 해결되고 권위주의를 거부할 수 있는 한국은 다양한 욕망을 촉발시키는 매력적인 사회이다.

마지막으로 실현가능성의 측면에서 청년배당, 즉 보편적 기본소득의 방향성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십년 넘게 획기적인 변화가 없는 사회보험 및 공공부조는 “사회”와 “공동체”에 대한 합의를 통한 복지국가의 구축이 저성장 시대의 한국 시민사회에서 얼마나 어려운 과제인지를 보여주었다. 기본소득은 사회를 경유하지 않고 개인을 자극한다. 한 마디로 논의하기 쉬운 프로그램이다.(이는 물론 위험한 지점이기도 하다.) 또한 비용 계산이 단순하므로 반드시 증세 논의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 이를 기본소득 도입의 장애물로 보기도 하지만,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누리과정을 둘러싼 갈등은 증세에 대한 합의 없이 도입된 복지정책이 중앙정부의 권력에 의해 얼마나 쉽게 휘둘러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고령화가 가속화 되고 있는 현재 한국사회에서 증세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더 미룰 수 없는 과제임에도 불구하고, “증세”라는 아젠다를 감당하고자 하는 정치인을 찾기 힘들다. 이미 세계 곳곳의 사례를 통해 또 총선을 앞 둔 국내 상황에서 보여지 듯 기본소득은 보편적으로 매력적인 정책임에 틀림없으며, 증세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낼 힘이 있는 의제이다. 오히려 증세를 위한 도구로 적극 활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농담 반 진담 반이지만 한국은 모든 국민에게 코드가 있고, 전산화가 잘되어있는 국가이다. 기본소득 지급이 기술적으로 이보다 쉬운 나라가 있을까?


4. 나가며

창업, 창직, 해외취업, 중소기업 취업, 마을 공동체, 사회적 경제. 진영을 가리지 않고 정책가들은 청년들에게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도박을 권하고 있다. 불확실성의 시대, 국가에서 비전을 제시할 역량이 없다면 개인들이 리스크를 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것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있는 도박이어서는 안된다. 개인들에게 일정한 소득이라는 예측 가능한 요소가 주어진다면, 미래세대는 알아서 제 욕망과 비전에 근거한 모험을 시작할 것이다. 즉, 기초노령연금이나 누리과정과는 다른 경로로 기본소득이라는 사회적 약속이 성사될 때, 88만원 세대, 에코세대, 삼포세대 등으로 명명되어 온 청년세대와 아직 명명되지 않은 청소년세대는 이 사회에 대한 신뢰를 갖고 비로소 더 나은 미래를 함께 상상하고자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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